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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 성공 후엔 겸허하게 행동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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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구름을 오래 쳐다보다 보면 어떤 형상이 보인다. 구름 같은 무작위한 현상에서 패턴을 발견하는 게 인간의 마음이다.

운(運)을 대하는 태도는 여러 가지다. 운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이 있다. 운이라는 게 있더라도 운이 결정적이라는 사람과 운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람이 있다. 운명론자 중에는 운을 적극적·긍정적으로 개척하려는 사람과 체념적인 태도로 운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무작위성에 속은』의 한글판(『행운에 속지 마라』·왼쪽)과 영문판 표지.

 어쨌든 최소한 운이라는 게 뭔지 몰라서 ‘운에 속는’ 경우는 피해야 하지 않을까. 『무작위성에 속은: 시장과 인생에서 운이 행하는 감춰진 구실(Fooled by Randomness: The Hidden Role of Chance in the Markets and in Life)』(2001)은 운이 세상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이 책은 미국 경제 매거진 ‘포춘’이 뽑은 ‘역사상 가장 스마트한 책 75권’ 중 한 권으로 선정됐다. 저자인 나심 탈레브는 2008년 경제위기를 예측한 것으로 인정받은 『블랙 스완』(2007)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탈레브는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세상과 우리가 상상하는 세상은 너무나 다르다”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세계관은 과학과 비과학이 교묘하게 섞여 있기 때문이다. 원인과 결과, 독립변수와 종속변수를 찾아내 그 관계를 설명하는 게 과학이다. 한데 인간은 우연히 벌어진 일에 대해서도 설명 해 내려고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면 ‘습관적으로’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또 자신에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착각한다.

 인간은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도 설명하려고 한다. 예컨대 성공은 오랜 노력이나 부지런함, 집요함, 위험 감수(risk-taking) 경향 등의 산물이다. 탈레브에 따르면 인간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우연이 성공에 결정적이다.

 탈레브가 말하려는 것은 능력이나 여러 개인적인 장점이 성공과 무관하다는 게 아니다. 다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탈레브는 이렇게 말한다. “물론 행운은 준비된 사람들을 편애한다. 열심히 일하는 것, 늦지 않고 약속 장소에 가는 것, 깨끗한 흰색 와이셔츠를 입는 것, 디오도런트를 바르는 것과 같은 통상적인 것들은 성공에 기여한다. 이것들은 성공의 원인은 아니다.”

 탈레브는 에고(ego)가 무진장 강한 작가다. 그는 ‘타깃’에 융단폭격을 퍼붓는다. 탈레브의 주장에 동화되는 독자들은 덩달아 통쾌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의 ‘타깃’은 일어난 일을 설명하거나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탈레브는 냉소한다. 가끔 예측이 맞는 경우도 있지만, “망가져 작동을 멈춘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는 게 탈레브의 지적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탈레브는 자신이 속한 분야이기도 한, 경제·경영 직종 종사자들에게 매우 부정적이다.

탈레브에 따르면, 천금을 희롱하는 은행가나 금융 분석가들은 해당 지식이 우월할 것이라고 우리가 믿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은행은 우둔한 사람들을 채용해 더욱 우둔한 사람이 되도록 훈련한다”고 탈레브는 주장한다. 탈레브에 따르면, 금융계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유능해서 성공했다고 착각한다. 사실은 거듭된 운이 장기간 계속됐을 뿐이라는 게 탈레브의 분석이다.

 그는 기자들의 경제 분석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주가나 환율의 오르내림에 대한 기사는 분석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에 가깝다고 본다. 탈레브는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안 읽는다. 차라리 고급 문예 잡지 뉴요커를 읽는다. 그는 또 노벨 경제학상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경제학은 ‘상식’에 불과하다. 탈레브는 “상식이란 우리가 18세까지 축적하는 오해의 모음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탈레브는 성공한 사람들에게 겸허함을 요구한다. 운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운 나쁜 사람들을 이렇게 위로한다. “능력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 불운한 사람들은 언젠가는 뜰 것이다. 인생에서 행운을 누린 운 좋은 바보는 천천히, 장기적으로 운이 덜 좋은 상태로 수렴하게 된다.” 사필귀정이라는 것이다.

 과학은 이미 일어난 일들을 다룬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자주 일어난다는 게 탈레브의 관점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는 전에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탈레브가 역설하는 것은 우리가 역사상 처음으로 일어나는 일이나 세계를 움직이는 무작위성의 수혜자가 되라는 것이다. 수혜자가 되려면 ‘영웅’이 돼야 한다. 영웅에 대해 탈레브는 이렇게 말한다. “영웅이 영웅인 이유는 그들이 이기거나 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이 영웅적이었기 때문이다.”

김환영 기자

Nassim Nicholas Taleb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1960년 레바논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그리스정교회에 속한 크리스천이었다. 워튼스쿨에서 MBA, 도핀 파리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뉴욕대 교수다. 저서로는 『블랙 스완(Black Swan)』(2007), 『안티프래질(Antifragile)』(2012) 등이 있다.

김환영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심의실 위원이다. 저서로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아포리즘 행복 수업』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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