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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차분하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차다. 하늘이 높아 보이면 주부의 가을을 챙기는 손길이 자꾸 바빠지고 마음도 조급해진다.
땔감을 준비해야하고, 김장양념거리도 준비해야 한다. 아이들의 가을·겨울 옷 등도 다 있는지…이것저것 준비할 것, 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추석이 다가오면 연중행사처럼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불안해진다. 물가가 턱없이 뛰어오르기 때문이다. 어제와 오늘의 값이 다르고 또 내일의 값이 다르다. 아이들은 추석빔 해 달라, 맛있는 음식 많이 만들어 달라고 주문이 많지만 일일이 다 들어주다가는 생활비가 바닥 날테니 막한 노릇이다.
명절 때마다 오르는 물가에는 주부들도 이젠 입을 다물 수밖에 없게 돼버렸다.
또 이렇게 한번 오론 물가는 내릴 줄을 모르니 이 책임은 누가 져야 되는 것일까?
어쩌면 주부들에게도 그 책임의 절반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2, 3년 전만 해도 사회전체가 들떠서 자가용에 선물을 실어 나르고 백화점마다 선물판매작전에 나서 발 디딜 틈도 없었으며 있는 집에서나 없는 집에서나 우선 먹고 입고 보자는 식으로 추석차림이다, 추석빔이 다하며 온갖 것을 다 장만하러 다니기에 주부의 하루해가 짧았지 않았는가.
이젠 차분히, 그리고 슬기롭게 자신을 돌아보고 주위의 내 이웃에게도 눈길을 들려 보아야겠다.
사실 명절이 되어 물가가 오르고, 또 오른 물가가 다시 내려갈 줄 모르는 까닭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주부들의 심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가령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A라는 주부가 명절이라고 해서 이것저것 당장 필요 없는 생활용품을 사놓으면 A보다는 형편이 훨씬 못한B주부도 흉내를 내고 싶어한다. 이러한 구매심리가 서민층에까지 파고들면 다만 명절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마치 경쟁하듯 물건을사들이게 되고 물건이 갈 팔리니까 따라서 자연히 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럴 때일수록 주부들의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본다.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모든 주부들이 명절이라도 평소와 다름없이 구매욕에 부채질하지만 않는다면 그래도 물건값이 마구 뛰어오를까?
가령 이런「생활의 지혜」는 어떨까. 우리옆집 찬이 엄마는 작년가을 시골에 계신 친정어머니에게 말린 고비·도라지·취나물 등을 성수기 때 싸게 사서 추석에 쓰도록 보내 주시도록 했다.
그 친정어머니는 참깨·콩·팥·동부 등도 해마다 미리미리 보내주셔서 송편 속이나 차례 상에 놓을 나물 등이 모두해결이 되어 추석이 와도 별로 살 것이 없었다고 한다.
이젠 곰살궂게 보따리보따리 자루마다 이름을 써서 소포로 보내주시던 어머님도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 추석 돌아오는 것이 더럭 겁이 난다고 한다. 혼자 손에 제철에 나는 곡식이나 나물 등을 구입할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비싸지기만 하는 물가에 아무런 계획도 없이 살수도 없고-그래서 찬이 엄마는 내년부터는 어머님의 살림솜씨를 본받아 낭비 없는 살림을 꾸리겠다고 마음을 사려 먹는다.
이 같은 주부의 지혜와 함께 물가당국에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자극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 주십사하는 것이다.
『옛날같이 못 먹고 못 입을 때나「추석, 추석」했지 요즘처럼 매일 잘먹고 잘입는데 무슨 명절준비가 필요하냐』는 아빠핀잔이지만 그것도 사회전체의 분위기가 그래 야지 모든 주부가 똑같은 마음가짐을 가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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