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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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두 귀신이 바둑을 두었다. 흑용 쥔 귀신이 첫 돌을 놓자 백을 쥔 귀신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돌을 놓지도 않은 채『내가졌네』하며 항복했다.
바둑 한문을 두자면 보통 2백30수 가량 걸린다. 그것을 전부 내다 볼 수 있다면 먼저 돌을 놓는 흑이 이기기 마련이다.
어제 조치훈8단이 명인전의 제1국을 백으로 불계승했다. 그가 상대한 대죽명인은 바로 엊그제 기성「타이틀」을 앗아간 둘도 없는「라이벌」.
일목의 바둑인은 5백만에서 1천만명 사이라 한다. 그 중에서 초단이상의 유단자만도 약 20만 명이 된다.
초단만 되어도 대만하다. 우선 그걸『인품』이라 한다. 도통했다는 것이나 같은 얘기다.
대국 중에 방석을 깔고 앉을 수 있는 것도 초단부터다. 아무리 기력이 비슷한 1급이라 해도「다따미」위에 그냥 무릎을 꿇고 않게 된다.
같은 입단자라해도「아마」「프로」와는 천지의 차이가 있다고 그린「프로」기사가 일본에는 약3백명이 있다.
「프로」중의 최고는 9단. 그 면상에는『그 기입신』이라 적혀있다. 이들만도 현재 30명이 넘는다. 대죽명인도 9단이다.
아무리『입신』의 초일류기 사라해도 20시간 이상에 걸쳐 1백여 수를 두자면 완착도 나오고 한두개의 의문수도 생긴다. 때로는 엉뚱한 악수도 나온다.
대죽9단은『바둑의 미학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모양』을 중히 여기는 기사다.
그는 또 가장 감각적인 기사라는 말도 듣고 있다. 그런 그가 중반부터 의문수와 완착의 속발로 초반의 우세를 그르쳐 놓았다.
그러나 그것은 뒤집어보면 유8단의 투지와 침착하고도 과감한 승부수들에 압도당한 탓이었다.
현재 일본에서의 최고의「타이틀」은『기성』이다. 상금이 최고의 2천만「엔」이 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자랑스런「타이틀」로는『명인』을 꼽는다.
옛날에는 명인이 바로 9단 이었다. 그 밑에 준명인이 있고「상수」가 그 다음이며, 이게 7단이었다.
그리고 명인에게 네 목을 놓고 둘 수 있으면 초단이었다. 이런 명인이 옛날에는 늘 한명 뿐이고, 그는 모든 기사를 다스리는 최고의 감투자리였다.
이번 명인전이 다 끝나자면 아직도 4개월이 걸린다. 그 사이에 건강이라도 해치면 큰일이다.
3속 방 끝에 4속 패한 일도 흔히 있다. 따라서 첫 관을 이겼다고 기뻐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자꾸만 백8단이 명인「타이를」을 끝내 따내고 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초읽기에 들어간 다음의 그의 표정은 꼭 신들린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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