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승인」 도식깨는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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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일 두나라 외상들이 지난 4월 동경에서 만났을 때 일본의 대북괴 관계가 주요 의논거리의 하나였다. 한국 측의 박동진 장관은 일본정부가 북한과의 접촉에 더욱 신중을 기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때 일본의 「오오끼따」(대래좌무낭)외상은 일본정부는 남북문제에 대처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과 노력을 지원하고, 대북괴 관계에 최대한 신중을 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겨우 4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오늘, 일본의 정계와 재계에는 언제 「오오끼따」 외상의 「약속」이 있었느냐는 듯「평양나들이 바람」 이 불고 있다.
9월 들어서 4일에는 「마끼에다」(전기원문)의장이 이끄는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대표단, 8일에는 자민당의 소위 AA연 (아시아· 아프리카연)일행 9명,17일에는 사회당의 일·북한문제특별위대표단, 그리고 10월중순에는 사민련의 「덴·히데오」 (전영부) 일행이 평양을 방문했거나, 할 예정이다.
특히 AA단 대표단의 북괴방문은 노동상까지 지낸 중진급의 중의원의원인 「후지이· 가쓰시」(등정승지)를 단장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후지이」 스스로가 북괴정치인들을 일본으로 초빙하겠다고 말한 사실 등은 우리의 비장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미국의「스티븐·솔라즈」하원의원,「톰· 레스턴」 전국무성대변인의 북괴방문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던 바와 같이 북괴는 한국이 지난봄의 정치적·사회적 불안을 극복하고 새로운 체제를 출범시킨 것과 때를 같이해 국제여론을 상대로 위장평화공세를 취하고 있다.
그 평화공세의 목적은 한국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특히 미국·일본 같은 주요 우방과의 관계에 난간의 쐐기를 박자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 정치적인 계산 말고도 북한은7개년 경제계획의 추진에 필요한 기술과 자본을 일본에서 들여오고, 그렇게 함으로써 한일간의 경제협력관계에 까지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중의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 같다.
북괴의 의도가 그러한 것임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데도 일본정계의 인사들이 줄줄이 평양을 찾아가고, 한편 북괴가 일본에 지고있는 8백50억「엔」의 빚을 받아내는데 최우선권을 두는 재계도 「동아문제연구회」라는 것을 만들어 북괴와의 교역확대를 피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이런 상황을 뒷짐만 지고 먼 산 바라보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인상이다.
한반도의 긴장완화는 남북한당사자간의 대화를 통한 단계적인 현안문제의 처리임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없다. 또한 남북대화의 진행과 함께 사강이 남북한을 교차승인 하는 것이 긴장완화의 또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은 이미 국제적으로도 신인을 받은 한반도 평화구축의 바람직한 도식인 것이다.
소련과 중공이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전적으로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현실에서 미국과 일본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북괴와 빈번한 접촉을 하는 것은 사강의 대남북한 관계 균형유지에 역행하는 처사다.
한국의 가장 가까운 우방이요,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안정에 직접 이해를 가진 미국과 일본이 지금 북괴를 상대로 해야할 일이 있다면 실현 가능성 없는 한국의 고립화 획책이나 대남비방 방송을 중지시키고 성의 있는 남북대화의 자리로 나오도록 강력히 촉구하는 일일 것이다.
동시에 미국과 일본은 소련과 중공에 대해시도 한국과의 접촉확대에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외교적인 설득을 하는 것이 일의 순서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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