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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계의 활성화를|표현의 자유 충분히 줘야|정신적인 가치개발에 중요한 역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우리민족의 역사에서 삼국통일과 세종 치세의 빛나는 업적은 문과 무가 서로 보완된 결과의 소산임을 알 수 있다. 그처럼 문무의 조화는 국운을 융창 시킬 수 있으나 무단에 치닫든지 문약에 흐를 때 나라는 쇠퇴하기 마련이다. 문무의 조화가 이상과 현실, 물질과 정신, 강과 유의 조화를 뜻하는 것으로 생각해볼 때 그 동안 경제적 성장에 비해 정신적 가치가 문제돼 왔음을 알 수 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한 국가와 사회의 정신적 가치확립에 있어 문학이 가지는 광범위한 파급의 효과성이 인식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시대에 있어 문인이 경이원지될 때 사회의 내면으로부터의 정신 진작은 기대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매매로 문화예술의 진흥책이 세워지고 그 혜택이 있을 때마다 문학은 예술계 여러 분야가운데 하나로밖에 간주되지 않았고 문학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전락되는 결과만을 보여왔다.
미술 음악 연예 공예 조각 등은 경제적 성장, 생활의 고도화에 쉽게 편승될 수 있는 여건에서 풍요를 누릴 수 있었으나 문학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날로 줄어들고 이 땅의 문인들이 기대볼 영토는 나날이 좁아졌다.
문학은 젊은이의 꿈의 대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재능 있는 인재들은 문학을 택하기를 꺼리고 있다.
문학이 가난의 대명사처럼 인식되는 사회적 풍토에서 빚어진 결과다.
그러나 우리의 현대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문학은 일제의 암흑기에는 우리 민족에게 마음의 등대가 돼주었고 해방 후에는 대한민국건국에 정신적 지주가 돼주었음을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또 민족의 융성기에는 언제나 문학도 함께 융창 했다. 문학계를 활성화시키는 길이 민족의 정신진작에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우리는 이로써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각방면에서 사회정화와 정신진작의 횃불이 일고 그 성공을 거두고 있다. 지난날의 물질만능의 풍조가 이제 사라지리라는 예감을 가질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들이 과감히 제언하고싶은 것은 문인을 사회에 부상시켜 사회적 대우를 받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신진작의 파급효과는 보다 크게 나타날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이 같은 문학의 본질적인 기능은 제쳐두고 오늘날 문학의 방법에 대한 문제가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음을 보게된다. 이른바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에 대한 논의가 그것인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것은 문학을 하는 방법, 곧 문학의 제재에 대한 차이일 뿐 문학의 본질에 대한 논의일수 없다는 것이다.
문인이 어떤 제재를 선택하든지 간에 그 제재를 고도한 문학으로 형상 시키고 승화시켜 높은 예술적 가치를 갖는다면 바로 그것만이 문학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제재가 위정자의 비위에 맞는다고 무잡한 작품이 횡행해서도 안될 것이며 현실참여라는 문학의 한 방법이 문학인의 현실, 혹은 체제에 대한 도전 또는 저항의 무기로 이용돼서도 안될 것이다. 또 예술의적인 작용이 문학에 깊이 침윤하여 문학활동이 위축되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문인들이 오로지 문학진흥이 정신진작의 핵심임을 인식하여 그 제재야 어떻든지 간에 문학진흥의 대전제로서의 기능을 다한다면 문학발전은 스스로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당국은 반 국가·반 사회를 표방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해주고 예술적 풍토를 조성해준다면 문학계는 스스로 활성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문인들은 연내의 소망이던 정신적 가치를 높이는 작업에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참여할 것이나 정신진작의 작업에 문학의 비중이 크다는 것을 새로운 정부가 충분히 인식하고 우리들의 과거의 불만이 다소나마 이유가 있었음을 통찰한다면 80년대 문학진흥의 꽃은 화려하게 만개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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