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학하는 대학의 좌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국의 대학이 오는 9월초에 일제히 문을 연다. 5·17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와 함께 내려졌던 휴교령이 1백7일만에 전면 해체됨으로써 대학은 비로소 정상을 되찾게 된 것이다.
각 대학별로 구체적인 개강 일자는 총학장이 문교부와 협의해서 별도로 정하도록 되어있으나 9월 초순에 모든 대학의 문이 열릴 것은 틀림없다.
학원의 안정이 사회 안정과 같은 맥락에서 파악되어 온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이번 대학의 개강은 사회적 안정이 확고하게 뿌리를 내릴 기반이 마련된 것과 때를 같이하여 그런 검에서 지극히 반갑고 다행스런 일이다.
물론 대학이 문을 연다고 해서 대학이 안고있던 그 동안의 문제점이 깨끗이 해소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우리는 대학인들과 국민의 단합된 노력으로 모든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규호 문교장관에 따르면 법정 수업 일수 1백80일은 앞으로 겨울 방학 단축이나 일요일 수업 등으로 메워질 수 있다는 것이며, 과외공부 일소에 따라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게된 2만4천여명의 학생들에겐 등록금과 최소한의 생활비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의 학원문제에 대한 세심한 배려의 일단이라 하겠다.
모 학원소요 사태의 재발 가능성에 대해 이 장관은 우리나라가 처한 여러가지 현실을 대학생들이 이해할 줄 믿기 때문에 앞으로 개강을 하더라도『별다른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대학생들이 지난날의 쓰라린 경험을 되살려 심기 일전해서 면학에 힘쓰고 명랑한 학원 분위기 조성에 앞장 선 것을 당부하고자 한다.
대학생들의 이른바 현실 참여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할 사람은 없다. 기성 세대의 낡은 사고 방식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때로는 활력소가 되는 긍정적이며 건설적인 면을 지닌 것이 젊은이들의 기상인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어야 한다. 지성인다운 절제와 학문에 바탕을 둔 비판이어야지 집단 행동화된 거부나 저항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우리의 일관된 생각이다.
대학은 이성과 학문의 전당으로서 국가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그 존재이유가 빛나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개발도상국가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집단적인 학외「데모」를 통해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현실 감각이 결여된 무모한 행동일 뿐 아니라 대학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일반의 회의마저 불러일으킬 수도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전두환 대통령은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학원내외의 소요 사태는 일체 용납치 않을 것이며 가두 시위의 악습은 다소의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근절시키고 말 것』이라고 언명한바 있었고, 이 문교장관도 대학이 문을 연 뒤 또 다시 소요 사태가 일어난다면 전원 유급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이러한 우려와 회고가 아니더라도 지금과 같은 여건 하에서 대학의 좌표는 무엇이며, 학생들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대학생 스스로 냉정히 판단해야하리라고 본다.
거의 한 학기에 가까운 대학의 공백기는 국가나 사회적으로는 물론, 학생 개개인에게도 큰 손실이다. 특히 학부모들의 희생과 본인들의 각고 끝에 가까스로 대학에 들어간 금년도 신입생들이 아직껏 대학생활의 참다운 멋을 맛보지 못했다는 것은 이유가 어디 있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학생들은 그 동안의 학문적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야겠지만, 정부도 대학이 다시는 이러한 불행에 휘말리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지원과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할 것이다.
당국이 할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면학 분위기 조성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학의 족벌 경영 등 학생들의 불만 요인을 제거하는 것도 당장 필요한 일이지만, 대학의 질적 향상, 장학금 지급의 확대 등을 통해 학문적 유인을 충분히 조성하는 일이야말로 학원을 근본적으로 정상화시킬 수 있는 방안임을 지적해 둔다.
그런 의미에서 전 대통령이 순수한 학술 활동을 포함한 학원 안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겠다고 다짐한 것은 마음 든든하다.
대학이 진리 탐구의 장으로서 제자리를 찾는데 불가결한 조건은 정부나 국민이 다같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서 대학의 비중을 제대로 알아 대학인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의 자세부터 가다듬는 일이다.
70년대에 이룩한 경제 발전에 발맞추어 대학 교육의 내실화를 위한 보다 충실한 투자로 대학 교수들이 마음놓고 연구에 몰두하고 학생들 또한 공부에만 정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데 한결 힘써야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미「아르바이트」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지급 등 여러가지 후생 대책을 내놓고 있거니와 대학의 연구 분위기를 북돋워 주는 대학 정책은 앞으로도 꾸준히 확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새시대가 개막하는 전 대통령의 취임식과 더불어 대학의 개강이 단행된다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닌 상징적인 의미를 띠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대학의 문을 닫은 5월18일 이래 불과 3개월반 동안에 우리는 과거 수십년을 응축한 것과 거의 맞먹는 일대변혁을 경험했다.
그 동안에 한 시대는 가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질서가 자리잡았다. 변화가 있는 만큼 대학인들도, 새로운 자세, 새로운 각오로 새 시대와 함께 나라의 발전과 자신의 성장을 기약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새 시대 탄생의 와중에서 가장 큰 희생을 치른 곳이 바로 대학이라는 사실에서 대학 개학을 보는 대학인들의 심정이 착잡하리란 것도 충분히 짐작한다. 하지만 새시대 개막에 따른 불가피한 아픔으로 그것을 승화시키고 보다 대국적인 안목에서 엄숙한 시대적 의미를 찾아야 하겠다.
모든 대학인들은 9월 개강을 계기로 대학이 학문 연구의 구심으로서 제자리를 찾도록 지성과 인격 도야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줄 것을 다시 한번 간곡히 당부해 마지않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