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교향악 天國… 프로 오케스트라 22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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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활동 중인 직업 교향악단은 핀란드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 헬싱키 필하모닉, 핀란드 방송교향악단 등 3개 단체다. 인구 56만명에 불과한 도시에서 무려 2백8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수당이 아닌 월급제로 생활비 전액을 받으면서 명실공히 프로 연주자로 살아간다.

단적인 예로 핀란드 방송교향악단 단원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6천8백37만원이다(컴퓨터 프로그래머는 4천1백20만원). 헬싱키 필하모닉의 연간 공연 횟수는 1백7회. 평균 나흘에 한번 꼴로 무대에 선다는 얘기다. 공연당 평균 관객수는 1천3백84명이다.

핀란디아홀(1천7백석)에 상주하고 있는 헬싱키 필하모닉은 정기연주회 프로그램을 이틀 연이어 공연한다.

입장권은 지휘자.협연자의 지명도와 상관없이 모든 공연이 전석 15유로(약 2만원). 경로 우대자 10유로(약 1만3천5백원), 학생.실업자는 5유로(약 7천원), 10명 이상 단체 입장객은 20% 할인 혜택을 준다. 다른 교향악단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핀란드 국민의 다섯 명 중 한 명이 연간 1회 이상 교향악단 공연을 관람한다.

올해로 핀란드에서 22개 프로 교향악단에 대해 정부가 총예산의 25% 이상을 지원해 주도록 하는 '교향악단법'이 시행된지 10주년을 맞는다.

물론 창단 과정에서부터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 지방의 음악애호가들이 주축이 돼 창단한 다음 지방 정부에서 예산의 60% 이상을 지원해 자생력이 생길 때 비로소 국가가 지원에 나선다.

핀란드는 세계에서 전체 인구 비율로 교향악단이 가장 많은 '교향악 천국'이다. 인구 5백50만명에 불과한 핀란드에서 활동 중인 프로 교향악단은 모두 22개나 될 정도다.

케미.사본린나 오케스트라처럼 월급을 받는 정단원이 현악기 수석 주자 4명뿐이어서 평소 현악 4중주단으로 활동하다 공연에 따라 객원 단원을 보태 40여명 규모로 무대에 서기도 한다. 그래서 '오케스트라 없는 도시는 도시가 아니다'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이웃 도시 교향악단과 합동 공연을 하거나 객원 단원으로 자리를 채우더라도 정단원 4명의 앙상블도 오케스트라라고 이름 붙이는 시민들의 자긍심 때문이다. 인구 밀도가 낮고 도시 간의 거리도 멀어 음악도 자급자족해야 하는 지리적 원인도 무시할 수 없다.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은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다. 어릴 때부터 싼값에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음악교육 시스템 덕분에 클래식 음악은 핀란드의 공공 자산처럼 여겨지고 있다.

오케스트라가 많다는 것은 지휘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다. 그만큼 '악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1백년 가까이 된 정상급 오케스트라들도 재능만 있으면 얼마든지 신예 지휘자를 무대에 세운다.

헬싱키(핀란드)=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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