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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이 팀장으로 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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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큰일 났다. 지각이다. 새로 온 ‘갓(GOD)순신’ 팀장에게 또 호통을 듣겠구나. 설마 이 정도로 시말서 쓰라고는 안 하겠지. 신임 팀장이 온 후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부임하는 날 팀원들을 모아놓고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라는 영문 모를 말을 비장하게 외치더니, 당장 모든 프로젝트의 진행상황을 정리해 보고하라며 닦달이다. 아직 8월인데, 내년 업무계획까지 짜고 있다. 심지어 팀에서 쓰는 복사기, 팩스까지 직접 챙긴다. 모이면 팀장 욕이지만, 본인이 가장 열심이니 할 말이 없다. 어제는 회식에서 만취해 토하더니, 오늘 새벽 제일 먼저 출근했단다. 아 참, 매일 일기까지 꼬박꼬박 쓰는 것 같다.

 (이순신 장군은 훈련장에 제일 먼저 나와 끝날 때까지 병사들을 직접 지휘했다. 훈련에 빠지거나 늦은 병사에겐 불호령과 함께 벌이 내려졌다. 전라 좌수사가 된 후 좌수영에 속한 5관 5포의 모든 전선과 무기, 성곽과 군량미를 일일이 확인하고 문제가 있으면 담당자를 징계했다. 조선 수군의 주력선인 판옥선을 건조하고 거북선 건조에도 돌입한다. 병사들의 불만은 높았다.)

 그런데 이 양반, 은근 기분파다. 쏠 때는 통 크게 쏜다. 낭만적인 구석도 있다. 그저께는 점심 먹으러 나갔다가 공원에 꽃이 피었다며 캔맥주를 사 직원들과 나눠 마시기도 했다. 그가 온 후 팀의 실적은 크게 늘었다. 경쟁 PT에도 나갔다 하면 이긴다. 팀원 한 명 한 명의 공을 꼼꼼하게 챙기는 것도 장점. 상부에 올리는 평가서에 각 팀원의 성과와 업무 성실도를 꼼꼼하게 적어 내, 팀원 중 3명이 ‘우수직원상’을 받기도 했다.

 (이순신은 부하들을 끔찍하게 챙겼다. 임란 초기 이순신의 전라좌수영은 원균의 경상우수영에 합류해 옥포해전 등에서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전공(戰功)을 조정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이순신이 합동보고서를 쓰자는 원균과의 약속을 어기고 수하 부하들의 공적을 상세히 기록한 보고서를 먼저 제출하면서 둘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회식도 자주 했으며 술과 풍류를 즐겼다.)

 결론:이순신 장군이 팀장으로 온다면 당신의 삶은 엄청나게 피곤해질 것이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열심히 하고 싶어지며,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단, 그전에 베이지 않는다면.

 (참고·도움말:영화 ‘명량’, 『전쟁의 신 이순신』(휴먼큐브),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 소장, 이상훈 해군사관학교박물관 기획실장)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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