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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축구 용어 좀 썼지요 귀국하니 웃긴 놈 됐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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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브라질 월드컵에서 ‘버럭 해설’로 화제를 모은 안정환(38·사진) MBC 해설위원을 최근 서울에서 만났다. 본지 해설위원으로도 활약한 그의 오른손은 해설 준비로 볼펜을 많이 만져 물집 자국이 선명했다. 그는 “발은 굳은살을 제거해 봤지만 손은 처음이다”며 웃었다. 안 위원은 ‘꽈배기 킥(다리를 꼰 채로 차는 라보나킥)’, ‘니은(ㄴ)자 슛(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들며 때리는 슛)’ 등 어록을 남겼다. 최용수(41) 서울 감독은 “방송 3사 해설위원 중 안정환이 최고였다. 해설도 시청자가 원하는 재치가 있어야 한다”고 칭찬했다. 안 위원은 “브라질을 갔다 오니 웃긴 놈이 됐더라”며 “지인들에게 얼리 크로스(한 박자 빠른 크로스), 컷 백(골라인을 타고 들어가 뒤로 짧게 내주는 패스) 같은 전문용어를 쓰니 잘 모르더라. 축구 잘하는 친구가 TV를 보며 설명하는 듯한 해설을 하고 싶어 조기축구 용어를 썼다”고 말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네이마르(22·브라질)에게 척추골절을 입혀 살해 위협을 받은 수니가(29·콜롬비아)를 보고 2002년 월드컵이 떠올랐다. 난 이탈리아와 16강에서 골든골을 넣고 소속팀 페루자(이탈리아)에서 방출됐고, 아내가 혼자 짐을 싸러 갔는데 차를 다 부숴놨더라. 이탈리아의 한 사전에 ‘기분 별로다’는 뜻의 ‘꼬레아’란 신조어가 등재됐다고 하더라(웃음).”

 - 축구팬들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이임생의 붕대 투혼을 그리워하고 있다.

 “월드컵에서 열심히 안 뛰는 선수는 없다. 그러나 그냥 열심히 뛰는 것과 절실히 뛰는 건 차이가 크다. 칠레·멕시코·코스타리카 등 아메리카 팀들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뛰는 듯했다. 모든 것을 다 불살랐기에 져도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이 마지막 월드컵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선수 때는 잘 모른다. 월드컵 출전은 운석을 주울 확률과 비슷하다는 걸 후배들이 알았으면 한다.”

 - 쓴소리를 많이 해 원망도 들었겠다.

 “경기에 몰입하다 보니 후배들이 좀 더 잘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쓴소리를 했다. 듣기 싫으면 한 귀로 흘리고, 와 닿으면 받아들이면 된다. 나도 현역 시절 욕을 정말 많이 먹었지만, 인정할 건 인정했다. 수비 가담이 적다고 해서 악착같이 뛰었고, 헤딩 못한다고 지적 당해 매일 연습했다.” (안정환은 2002 월드컵에서 헤딩으로만 2골을 넣었다.)

 - 홍명보(45) 감독이 자진 사퇴했다.

 “진정을 담아 ‘어려운 시절 한국축구를 위해 애써 주셔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4-2-3-1 포메이션을 고집한 게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지만, 선수 자원이 부족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실패도 한국 축구의 자산이다. 홍 감독이 한국 축구를 위해 한 일들을 쉽게 잊지 않았으면 한다.”

 - 7년 만에 외국인 감독이 온다.

 “브라질 월드컵 결승 킥오프 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난간까지 내려가 몸을 푸는 독일 선수들을 꽤 오랜 시간 지켜보더라. 정치 쇼가 아닌 진정한 축구사랑이 느껴졌다. 메르켈 총리가 관전한 경기에서 독일은 11승1패를 거뒀다고 한다. 독일은 소프트웨어 업체와 손잡고 데이터 축구로도 큰 효과를 봤다. 우리도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는 게 능사는 아니다. 축구를 서포트하는 모든 조직이 합심해 지원해야 한다.”

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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