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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유보금에 세금? 일본선 상상할 수 없는 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86호 18면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매긴다죠? 정책의 실효성 여부를 떠나 대기업의 입김이 센 일본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후카오 교지 교수가 본 한국 경제

후카오 교지(사진) 교수는 한국에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화두가 되고 있다는 점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역대 최대라는 최근 중앙일보 일본어판 기사를 흔들어 보이며 “1990년대 일본과 경제지표가 비슷하긴 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한국은 ICT 분야 투자도 많이 했고 일본보다 글로벌·개방형 경제구조여서 ‘잃어버린 20년’을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은 작다”고 전망했다. 후카오 교수는 경제·경영학 분야의 명문인 히토쓰바시대의 경제연구소장이다. 다음은 주요 문답.

-지금 한국에선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에 빠져 들어가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1990년대 일본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가계소비 부족, 경상수지 흑자, 높은 원화가치 등이 그렇다. 기업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가서 국내 생산성이 낮아지는 것도 닮았다. 일본과 달리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지 않았다고 했는데 내가 한국은행 자료를 살펴보니 한국의 GDP 대비 총토지가치는 굉장히 높은 수준이더라.”

-그럼, 한국도 장기 침체에 들어가는 건가.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우선 1985년 플라자 합의 같은 대외적인 압박이 없다. 또 일본은 ICT 분야에 투자하지 않아 생산성이 저하됐는데 한국은 IT 강국이다. 한국은 이미 미국·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일본은 이제서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하려고 하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기업들도 일본보다 훨씬 다이내믹하다. 외국어에 능통한 숙련된 노동인력도 많다.”

- 그래도 내수부진과 고령화로 인한 생산성 저하 우려는 남아 있다.
“서비스산업 활성화 등으로 내수진작을 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일본도 최근 경제산업성에서 고부가가치 창출 관련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고령화는 반드시 생산성 저하를 초래하는 건 아니다. 장년층의 경험을 살려 얼마든지 잘 활용할 수 있다. 오히려 난 한국은행이 왜 금리 인하에 나서지 않는지 궁금하다. 정치적인 문제가 있나? 통화·환율정책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현 상황에선 충분히 효과가 있어 보인다. 한국은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고 알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간극도 일본에 비해 커 보인다. 정부가 이런 쪽에 좀 나서야 하지 않을까.”

-아베노믹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썩 내키진 않는다. 소비세를 8%로 올려 재정 건전성을 확충한다지만 모처럼 높아진 소비수요를 꺾어버렸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일본 정부는 현재 중소기업의 해외진출을 장려하고 있다. 난 이 부분도 회의적이다. 물론 도요타 같은 거대 기업의 하청업체들이 따라나간다면 도요타에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이 해외진출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많은 전문가가 성장률을 높이려면 규제완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비즈니스와 공적 영역이 오버랩되는 의료·교육·교통 분야의 규제완화는 신중해야 한다. 한국은 세월호 사건을 겪지 않았나. 효율적인 공공 서비스가 필요한 부분인데 이 점에선 일본도 문제가 심각하다. 관료 조직이 부처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 아베 총리가 힘을 실어준 경제산업성은 최근 타 부처와 공조하는 모습을 약간 보이고 있지만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정부로부터 독립된 연구 및 정책입안 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민·관 합동 ‘산업경쟁력회의’를 매일 해봤자 관료들은 예산확보 생각이나 할 것이다. 관료개혁이 중요한데 일본에선 이미 물 건너갔다.”

도쿄=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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