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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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4면

인류학자 「레비·슈트로스」는 20세기 이후의 소설이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대면할 수밖에 없었던 두가지 주요개념을 「진보」와 「산업문명」으로 풀어 본바 있다. 진보와 산업문명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 혹은 추구로 말미암아 개개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때때로 인간상실의 비극을 겪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 70년대 초부터 이 점에 눈을 떠왔던 한국소설은 오늘날 상업적 가치관과 한 개인의 참된 영혼 사이의 심각한 갈등양상을 주요 안건으로 다루게끔 되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가치관의 차원과 생존의 차원 사이의 싸움이 오늘날 한국 작가의 중요한 주제의식의 하나로 굳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중편 『새를 위한 악보』 (한국문학)에서 이청준은 특이한 공법을 구사하면서 인간에게 있어 과연 발전이라든가 진보와 같은 개념은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고 있다. 이 작품은 『치질과 자존심』 『돌담울타리』 『웃음선생』 등 세개의 「에피소드」로 짜여져 있는데 표면상으로는 이 세개의 이야기는 서로 연계성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 세개의 「에피소드」는 각각 현대인의 삶의 병리를 우화적 수법 (첫번째 이야기가 예외에 가깝긴 하지만)으로 파헤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심한 치질을 앓고 있으면서도 치질전문의가 효과적인 치료책으로 제시한 사지보행을 거절하는 언어학자는 사람이 직립보행의 존재로 진화하게 된 배경을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있다. 사람은 부끄러운 것을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은 자존심 때문에 결국 사지보행에서 직립보행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오늘날 사람들은 저마다 힘겨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감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작품에서 치질은 육체적 고통의 한 본보기로 제시된 것에 불과하다.
두번째 이야기는 이웃해서 사는 두 사람이 끝내는 높은 담쌓기 경쟁을 벌이게 된다는 구성이다.
지나친 소유욕 혹은 자기보호 욕구는 마침내 자기폐쇄와 자기소외라는 병적 징후를 가져오게 된다는 교훈이다. 이 부분에서 이청준은 모순논리를 적절히 활용하여 그 특유의 분석취미가 독자에게 가져다주기 쉬운 지루한 감을 미리 잘 덜어내고 있다. 세번째 이야기는 진보와 산업문명의 신도가 되어버린 현대인들의 희로애락 체계가 옛날과 사뭇 달라져 버렸음을 강조한다.
백시종은 『청산을 기다리며』 (소설문학)에서 내촌강을 끼고 있는 송학읍내를 무대로 하여 「산업화」 「물신화」의 복음에 사로 잡혀 있는 온 마을사람들 틈에서 고군분투하는 한 인물을 보여준다. 주인공 박승도 (교사)를 빼놓은 모든 사람들, 가령 그의 부인 아버지 아들 교장 군청관리 그리고 마을사람들은 한결같이 송학읍내를 남주산업 휘하의 놀이터로 만들려 하는데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된다.
박승도는 마침내 「한 마리 깨끗한 내촌강의 학처럼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 버리는」 식으로 패배하고 만다. 결국 박승도의 패배는 송학읍내 주민들이 보여 준 「발전에의 의욕」과 「산업문명에의 열기」가 얼마나 거센 것이며 충동적인 것인가 하는 점을 반증하기도 한다. 박승도의 고집이랄까 줏대 같은 것이 좀 더 단단하게 설명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지적할 수 있겠다.
이청의 『카이저의 땅』 (한국문학) 은 장석만 목사의 피해의식을 매개로 해서 종교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잘못된 접근법을 지적하고 있다. 장석만 목사는 성화부리는 부인과 무언의 반항을 하는 아들, 지적 혼란에 빠져 있는 차선생, 뚜렷한 믿음이 없는 장로 집사 교인들에 둘러싸여 있다.
장석만 목사는 고독한 부적응주의자란 면에서 백시종이 만들어낸 박승도란 인물과 일치하고 있다. 장석만 목사와 박승도는 분명 생존의 차원에 맞서서 가치관의 차원을 지켜내려 한 것이다. <건국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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