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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사내유보금 과세 필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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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논쟁의 초점 최경환 경제팀이 국내 투자 활성화와 내수 진작을 위해 사내유보금 과세안을 제시하면서 논쟁이 뜨겁다. 정부는 최근 기업들이 500조원 넘는 사내유보금을 쌓아둠으로써 기업 자산이 투자·배당·임금 등으로 순환돼 경제 활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일부 강제성을 동원해서라도 이 돈을 경제 활력을 높이는 데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기업 측은 사내유보금 과세는 실질적으로 법인세율 증가와 똑같은 효과를 내며, 기업들의 재무구조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며 반대한다. 사내유보금 과세를 둘러싼 찬반 양론을 들어본다.


사내유보금은 가계로 흘러야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번 세제 개편안의 가장 큰 쟁점은 ‘기업소득환류세제’다. 기업이 거둔 이익을 사내 유보로 쌓는 대신 투자·인건비·배당에 쓰도록 유도하려는 제도다. 목적은 경기 활성화를 통한 저성장 탈출이다. 이는 기업에 돈을 얹어주던 전통적 경기 활성화 정책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서 최경환 부총리 본인의 말대로 “지도에 없는 길을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이례적 처방은 우리 경제가 기존의 방법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는 진단 때문일 것이다.

 우리 경제는 2008년 이후 벌써 7년째 실질임금이 늘어나지 않는 ‘임금 없는 성장’을 하고 있다. 배당소득은 조금씩 줄어드는 중이고 이자소득 역시 저금리로 인해 거의 늘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계가 기업으로부터 얻는 임금·배당·이자가 모두 정체돼 기업 소득이 가계소득으로 이어지는 주요 경로가 전부 막혀버린 상황이다. 기업은 눈부시게 좋아져도 국민 경제는 별로 나아지지 못하는 근본 이유다. 그러다 보니 저축을 해야 할 가계가 빚을 지고, 투자를 해야 할 기업이 저축을 하고 있다. 게다가 기업 저축은 지나치게 과다해 투자도, 고용도, 임금도, 배당도 늘어나지 못하고 경제 전체가 기력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가계 저축이 지나치면 금리를 내려 저축 대신 지출을 유도하듯이 지금은 기업 저축의 인센티브를 줄여 과다한 사내 유보 대신 투자와 고용을 늘리도록 유도할 때다. 이런 고민 끝에 나온 것이 기업소득환류세제다. 기업 소득이 가계로 흘러가는 투자·고용·임금·배당이라는 경로를 다시 뚫어 경제 선순환을 재가동시키려는 것이다.

 유보 소득을 과세 대상으로 한다는 소식에 재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사내 유보의 대부분은 이미 투자되고 있는데 무슨 투자를 더 유도하겠다는 거냐며 당혹해하고 있다. 그러나 토지, 부동산, 계열사 확장을 위한 지분 취득, 주식 매입, 예금, 채권 등은 기업의 입장에선 투자일지 몰라도 국내총생산(GDP)을 집계하는 국민 계정에서는 투자로 간주하지 않는다. 기업소득환류세제가 유도하려는 투자도 어디까지나 국민 계정상의 투자, 즉 설비, 건설, 연구개발(R&D) 투자 등 유·무형의 실물투자다.

 기업소득환류세제가 경영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발도 있다. 이익을 어떻게 처분하느냐는 기업의 자유에 맡겨야지 왜 정부가 간섭하느냐는 주장이다. 그리고 세금을 내고 난 소득에 또다시 세금을 매기는 건 이중과세라는 지적도 있다. 일리가 있다. 조세이론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논문이나 교과서에서 잠시 눈을 들어 2008~2009년 법인세 감세 당시의 상황을 되돌아보자. 글로벌 금융위기로 심각하게 악화되던 재정여건에도 격렬하고 집요했던 반대를 무릅써 가며 법인세 감세를 단행했던 과정을 기억해보자. 법인세를 깎아주면 기업들이 그 돈으로 투자와 고용을 늘려 경제를 살려줄 거라는 기대 하나가 국민을 설득했던 유일한 명분 아니었나.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보니 투자도 고용도 경제 활성화도 애초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친 채 엉뚱하게 사내 유보만 매년 천문학적 규모로 누적되고 있다. 지난해까지 5년간 법인세 감세 규모는 총 28조원을 넘어섰고, 모자라는 세금을 메우기 위해 비과세·감면이 줄어든 근로자들에게는 세 부담이 늘어났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은 대부분의 납세자들은 이런 상황을 납득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줄어든 세금을 어디에 쓰든지 기업의 자유에 맡겨두었던 지난 6년간의 결과가 결국 이런 식이라면 이제는 정부가 납세자를 대신해 애초의 기대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할 때가 됐다.

 우리 경제는 지금 저성장의 함정에 빠져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길을 잃었다면 지도에 없는 길도 가봐야 한다. 기업소득환류세제를 잘 다듬고 기업도 거기에 적극 호응한다면 우리 경제는 저성장에서 벗어날 수 있고, 가계도 기업도 서로 윈-윈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실효성 없는 사내유보금 과세

연강흠
연세대
경영대 교수

새로 출범한 경제팀이 사내유보금에 대해 세제상 불이익을 주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기업이 번 돈을 가계로 돌려 내수를 진작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야당에서는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로 투자를 촉진하자고 발의한 적도 있다. 내수와 투자 부진이 당면 과제이기는 하지만 사내유보금의 성격상 의도한 바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매출에서 제조비·인건비·물건비·감가상각비·이자·법인세 등 비용을 제하고 남은 이익은 주주의 몫이다. 이 가운데 배당을 하고 남은 자산은 기업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투자자금은 차입과 신주 발행으로 외부에서 조달하기도 하지만 건전한 기업은 주로 이익을 유보해 확보한다. 내부 자금이 외부 자금보다 저렴하며, 투자 기회를 잡기 위해서도 충분한 자금을 유보해두어야 한다. 사내유보금은 자본을 확충해 경영 건전성을 유지하는 역할도 한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가 배당을 늘려 가계의 소득 증가로 내수를 진작시킨다는 구상은 현실성이 없다. 반강제적 배당은 기업의 자산을 유출해 투자 여력과 주가를 약화시킨다. 계속 이익이 많이 날 것으로 전망해 배당을 자발적으로 늘리는 경우에나 주가에 긍정적이다. 반강제적 배당으로 인한 가계의 자산가치 하락과 배당소득세 증가로 인한 실질소득 하락은 오히려 내수에 부정적이다. 국민연금·보험사·공제회·펀드 등 기관투자가는 배당을 준다고 소비를 늘리지 않는다. 외국인 투자자는 배당을 해외로 유출할 가능성이 있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로 당장 세수를 늘릴 수는 있으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배당을 안 주면 사내유보금에서 세금을 거두고, 배당을 주면 배당에서 세금을 거둔다. 기업이 사내 유보에 세금을 내건 배당하건 간에 투자여력은 약화해 성장이 둔화하고 미래 이익이 줄어든다. 투자를 위해 차입하거나 신주를 발행하면 각종 발행 비용 부담으로 경쟁력이 약화된다. 사업의 해외 이전을 고려할 수도 있다.

 또 법인세를 내고 다시 배당소득세를 내므로 이중과세다. 상황에 따라 미래에 배당하는 데 쓰일 수도 있는 사내유보금에 지금 과세를 하면 미래 배당에까지 과세를 하는 꼴이다. 이중·삼중의 과세인 셈이다. 게다가 사내 유보 대신 배당을 늘리면 종합소득세 과세 대상이 늘어난다. 주식을 처분해 소비할 수도 있는데 배당을 주면 세금은 더 늘어난다. 세금이 늘어날수록 투자와 소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적정유보 초과소득에만 과세한다고 해도 적정유보 수준을 정부가 정하기는 어렵다. 적정 유보는 배당정책, 부채비율, 자금조달, 투자계획 등과 관련이 있어 기업별로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사업·금융 환경, 내부 역량, 투자기회, 주주 구성 등을 고려한 고도의 경영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일률적인 적정 유보란 있을 수 없다. 투자로 유도하기 위해 사내유보금 중 현금성 자산에만 과세한다고 해도 적정 현금성 자산 역시 정부가 일률적으로 정할 일이 아니다. 기업은 현금 결제, 임금 지급 등 일상적 경영활동 영위 목적뿐만 아니라 장래에 예기치 못한 경영환경 변화의 대비나 투자기회 포착을 위해 현금성 자산을 보유한다. 따라서 기업마다 각기 다른 사정을 반영해야 하고 이를 반영한 기준이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외국에서는 기업을 소유한 경영자가 세금 회피 목적으로 사내 유보를 해 배당소득을 이연 또는 사적 소비를 비용 처리해 탈세하거나 전문경영자가 유보금을 개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내유보금 과세를 도입한 사례는 있다. 그러나 이는 회계감사나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다. 사내유보금은 국내 기업이 열심히 노력해 쌓은 결과물이다. 이런 유보금을 사유재산 침해의 논란 속에 가계로 옮기겠다는 발상은 내수 진작과 투자 촉진의 성과 없이 기업과 가계에 부담을 줄 뿐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투자에 대한 세제혜택 부여나 투자 억제 규제 철폐 등 사내유보금이 투자에 사용돼 수요를 진작하고 고용을 창출하도록 하는 경제활성화 정책이다.

연강흠 연세대 경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