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의 입' 9년] 20. 이후락 평양 잠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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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1972년 5월 평양으로 잠행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왼쪽)이 김일성 북한 주석을 만나고 있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의 제의로 시작된 남북 적십자회담은 예비회담만 거듭될 뿐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본회의를 열게 된 것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72년 5월 평양으로 잠행하여 7.4 남북 공동성명 문안에 합의한 뒤의 일이다.

이 부장은 박 대통령에게 평양 잠행을 허가해주도록 간청했다. 직접 북한에 가서 그곳 사람들과 만나보고 보고드리겠다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2차대전 때 나치 독일의 루돌프 헤스도 화평조약을 체결하려 한다며 영국으로 단신 잠행했으나 영국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감옥에 처넣었지 않았느냐. 이 부장은 우리나라의 정보 총책임자인데 그런 사태가 발생하면 중대한 문제가 된다"며 만류했다. 그러자 이 부장은 "그때는 갖고간 독약을 먹고 자결하겠다"며 거듭 간청했다. 그가 무엇때문에 그토록 평양행을 강력히 원했는지 내막은 아직도 신비 속에 묻혀있다.

이 부장은 72년 5월 2일 오전 10시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께 출발 인사를 드리고 판문점을 통해 평양으로 들어갔다. 귀경이 예정된 5월 4일, 그것도 0시30분쯤에 이 부장은 김일성이 만나려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급히 잠자리에서 일어나 폭우가 쏟아지는 칠흑같은 밤에 산길을 달려 김일성을 만나러 갔다. 이 부장은 이때 놀란 가슴이 나중에 병이 되어 오래도록 고생했다고 나는 들었다.

김일성은 이 부장을 영웅이라 추켜세우며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이 부장은 "박 대통령과 나는 한반도의 통일이 미국.중국.일본.소련 등 4개국의 간섭없이 우리의 힘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김일성도 "우리의 입장도 외세에 의존하는 통일에는 반대한다. 이 점에 있어서 나도 박 대통령과 의견을 같이 한다"고 화답했다. 이어 이 부장이 "박 대통령은 외세의 간섭을 대단히 싫어한다"고 전하자 김일성은 "그렇다면 우리는 벌써 문제에 진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외세를 배제하자. 우리끼리는 싸우지 말자. 하나의 국가로 통일하자. 공산주의니 자본주의니하며 문제삼지 말자"고 대답했다. 이 부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4000만 내지 5000만 인구를 가진 나라는 강국이다. 100년 전 우리는 약했기 때문에 강대국에 복종했다. 앞으로는 강대국이 우리에게 복종할 것이다. 내가 분명히 얘기할 수 있는데 강대국은 우리의 통일에 대해 말로만 좋다고 하지 내심은 원치 않고 있다." 김일성은 "강대국과 제국주의는 나라를 여러 개로 쪼개려 한다"고 응답했다.

이 부장과 김일성의 이 같은 대화는 우리 동맹국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아주 위험한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부장의 진의가 어디 있었는지 본인의 공식 해명이 절대로 필요한 대목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그것을 들은 바 없다. 흔히 똑똑한 사람이 제 꾀에 넘어간다는 속담이 있다. 그렇다해도 이 문제는 너무나 심각한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결코 외세 배격론자는 아니었다. 국제협조주의자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70년대의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겠는가.

김성진 전 청와대 대변인·문공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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