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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남편 장보기·주택가의 새벽 「번개시장」·음주 대신 독서|불경기 극복 안간힘 「생활」이 달라졌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불황을 이겨가며 산다-. 퇴근길의 「샐러리맨」들이 대폿집 순례 대신 가정으로 직행, 동네 시장이나 「슈퍼마킷」에서 저녁 찬거리를 손수 사가고, 퇴근 후 남아도는 시간을 독서로 메우기 위해 서점에서 책을 사가는 직장인들이 부쩍 늘었다. 또 도시근교 주택가에는 인근 농민들과 도시의 알뜰 주부들이 중간상인을 개입시키지 않고 이른 새벽 잠깐동안 농산물을 직접 거래하는 「번개시장」이 곳곳에 형성돼 붐비고 있다. 시민들의 생활 구석구석에 불황을 견디는 새로운 생활양식이 자리잡히고 있는 것이다.

<남편 장보기>
퇴근 후 일찍 귀가하는 「샐러리맨」들 가운데 동네 「슈퍼마킷」에 들러 찬거리나 간단한 생활용품을 손수 사들고 들어가거나 저녁식사 후 가족과 함께 집 근처 상점을 찾아 장보기를 하는 모습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26일 하오 7시쯤 서울 여의도 H「슈퍼마킷」에 부인과 함께 장을 보러온 이길윤씨(37)는 『봉급자 아내의 고충을 직접 느껴볼 겸 내 스스로 식단을 짜보는 재미도 있어 요즈음 가끔 이곳을 찾는다』면서 『요즘 같은 세상에 생활 속의 즐거움을 이런 식으로 찾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번개시장>
이른 새벽 번개처럼 잠깐동안 형성된다고 「번개시장」이라고 부른다. 대구시 중구 태평로 1가 23 「번개시장」에서는 시중에서 근당(6백g) 3백원씩 하는 풋고추가 1백원, 접당 1천원인 풋마늘은 8백원, 무·배추 등은 한 단에 2백∼1백원씩 하는 등 시중시세에 비해 평균 30∼50%나 싼값에 거래되고 있다.
번개시장이 열리는 시간은 통근열차나 시외 「버스」의 첫차가 도시에 도착하는 상오 6시부터 8시까지 2시간에 불과하나 일반시장의 하루거래량에 버금가는 상품이 유통되고 있다.
주부들은 번개시장에서 싱싱하고 값싼 상품을 더 싼값에 마음대로 골라 살 수 있어 5인 가족의 경우 부식비만도 월 평균 1만5천∼2만원까지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부 윤정숙씨(30·대구시 중구 동성로 3가 21)는 『일반시장에서 부식을 사들일 경우 부식비가 5천원이 소요됐으나 번개시장을 이용하면서 2천원이나 절약할 수 있는 데다 싱싱한 무공해식품을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번개시장에서 재미를 본 농민들은 새벽마다 「트럭」을 전세 내 서울 등 대도시 주택가에까지 진출, 「마이크」로 주부들을 모아 직접 거래하기도 하고 「리어카」에 농산물을 싣고와 직판하는 경우도 흔하다.

<서점가>
퇴근길의 직장인들이 3∼4명씩 짝을 지어 서점을 찾아 책 1∼2권씩을 사가는 모습도 늘었다.
이들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책으론 『대망』 『불모지대』와 같은 혼란기를 다룬 책들이나 1천∼2천원 상당의 문고판도 크게 인기가 있다.
서울 태평로 2가 329 춘추서관 주인 김응환씨(52)는 『최근 「샐러리맨」들이 3∼4명씩 독서 「클럽」을 만들어 책을 돌려보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면서 『젊은 직장인들 가운데 술 마시는 셈친다며 한번에 2∼3권씩의 책을 사 가지고 가기도 한다』며 흐뭇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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