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석학들의 진단 이라크戰 이후의 국제 질서] 조셉 나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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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은 이라크전의 승리로 사담 후세인과 함께 유엔도 사라질 것으로 본다. 리처드 펄 미 국방정책위원회 위원은 최근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신이여, 유엔의 죽음에 감사합니다"라는 제목의 기고를 했다.

그러나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는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을 정당화하고 반대자를 설득하는 소프트파워 행사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일방적인 행동과 국제기구에 대한 무시는 미국의 소프트파워를 약화시킬 뿐이다.

강경론자들은 소프트파워의 손실에 대해 코웃음을 친다.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국방비를 많이 지출하며, 미국에 대항하는 군사동맹을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정당성이 없다는 국제사회의 반발은 미국으로 하여금 더 많은 전비를 지불하게 했다. 반전국들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후세인의 위협에서 미 제국의 위협으로 돌리며 터키 같은 동맹국들의 미국 지원을 어렵게 했으며, 이는 결국 군사적 능력을 제한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내 매파들은 전후 유엔의 역할을 최소화하려 한다. 그들은 새로운 민주주의적 국제기구 창설을 주장하고 있으나, 전쟁의 정당성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분열은 민주국가들 간에 진행됐음을 기억해야 한다.

많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유엔은 미국이 이라크전을 치르며 잃었던 정당성을 되살릴 수 있는 수단이다. 유엔은 동티모르와 코소보 등에서 전후 인도적 지원에 나선 경험이 있다. 전후 복구에 필수적인 비정부기구(NGO)와의 관계도 미 국방부보다 훨씬 원만하다. 세계은행이 이라크 석유가 미국의 이해가 아니라 이라크인들의 이해에 맞춰 사용되도록 할 수 있다. 과도정부 구성에서도 유엔이 개입한다면 더 신뢰성이 있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라크 재건 등 국제 현안에 대한 강대국들의 토론장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부시 대통령은 파리와 베이징(北京).모스크바 등에 전화를 걸어 국제사회가 직면한 북한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정리=정재홍 기자hong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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