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은 神-人의 중간, 하지만 한의학 객관성 키워야"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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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상훈 원장

허준의 <동의보감>을 비롯해 한의학은 수백 년간 우리와 함께 한 전통의학이다. 하지만 늦게 굴러온 돌 '서양의학'이 먼저 굴러온 한의학을 밀쳐내고 있다. 현직 한의사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서울 서초동 수인재한의원 안상훈 원장(수인재두뇌과학 대표)을 만나 한의계의 불편한 진실을 허심탄회하게 파헤쳐본다.

-허준에 대해 '신과 사람의 중간'이라고 극찬하는 이유는.

"허준 선생님은 <동의보감>으로 주로 평가를 받으시는 분이죠. 재미있는 것은 <동의보감>에 허준 선생님이 직접 쓰신 부분은 단 한 곳도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 다른 책의 구절을 인용해 이뤄진 책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편집입니다. 기존의 한의학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허준 선생님만의 독창적인 관점에 따라 기가 막히게 책이 구성됩니다. 그리고 인용된 책들도 방대한데, 지금처럼 검색을 쉽게 할 수 없던 시절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책들에서 필요한 자료들을 적재적소에 인용했는지 감탄하게 됩니다."

"저도 학창시절 공부 잘한다는 얘기도 종종 듣고 한의대 진학해 다방면에 공부도 열심히 해봤지만, <동의보감>을 보면 허준 선생님은 사람과 신(神)의 중간정도 되는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저절로 존경심이 생깁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기록유산 중에 의학서적은 <동의보감>이 유일하다고 들었습니다. 한의사인 저만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인정받은 것이죠."

-하지만 한의학을 바라보는 관점이 좋지만은 않다. 양방에서는 한방이 과학적 근거가 없고, 연구논문도 거의 없다고 지적하는데.

"학문이 이뤄진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한의학보다 나중에 정립된 과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비판할 여지도 있을 겁니다. 이에 대해서는 짧은 지면에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링컨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죠. '많은 사람들을 잠깐 속이거나 한 사람을 평생 속일 수는 있지만, 모든 사람들을 평생 속일 수는 없다'라고요. 한의학이 문제가 있는 학문이고 효과가 없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될 수가 없습니다. 많은 동양학문들이 시대의 거대한 조류 속에 파묻혀 버렸지만, 한의학은 한국 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에서도 훌륭히 제 몫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효과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과학적 근거라는 것도 지금까지 수준에서 판단하는 것이지, 나중에 바뀐 사례가 얼마나 많습니까? 얼마 전 '약지가 더 긴 사람이 수학을 잘 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미신 같은 소리'라고 웃었을 겁니다. 하지만, 엄마 뱃속에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에 더 노출되면 약지가 길어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검지가 긴 사람보다 논리적이고 수학에 더 강하다는 것입니다. <동의보감>에 보면 눈·코·입이 어떻게 발달된 사람은 어떻게 처방하라는 내용들이 나오는데 실제로 임상을 해보면 상당한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과학수준으로는 입증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비과학적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되겠죠."

-의료기기 사용을 놓고 양-한방 갈등이 있다. 양-한방이 나아갈 길은?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이겠지요. 물론 의료도 직업이다보니 개인이나 단체로서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려는 힘도 상당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의료는 다른 직종과 달리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것이므로 갈등을 해결하는 원칙은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가?"여야 합니다. 의료기기의 원리가 단순하고 전문적인 의료지식이 필요없으며 환자에게 해가 되지 않는 것이라면 한양방을 막론하고 서로간에 전면적으로 허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양방에서 주로 사용하던 검안장비를 한의원에서 사용한 것이 문제가 돼 결국 헌법재판소까지 이르렀지만 '한의원에서 사용해도 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 취지는 위험하지 않고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은 장비는 영역간에 구분없이 사용하는 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지요. 저도 그 취지에 공감합니다."

-한의사로서 '한의학 분야가 이 부분은 부족하다'고 지적할 점은?

"우선 진단과 치료에 있어서의 객관성입니다. 예를 들어 일반인들이 관심을 많이 갖는 사상체질만 해도 체질판별이 한의사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혈액형이라면 의사에 따라 달리 판정되는 경우는 없겠지요. 치료에 있어서도 어떤 치료가 어떤 질환에 얼마만큼의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 객관적인 임상데이터가 나와야 합니다."

"또 하나는 진단이나 치료방법의 현대화입니다. 현대화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 의미는 이론은 한의학의 이론을 지켜나가더라도 그것을 구현하는 방법은 발전되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과학의 시대입니다. 과학적으로 발전된 방법과 한의학 이론의 접점을 찾아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과거의 문화 유산이 우리 모두의 것이듯이, 이 시대의 발전된 기술들 역시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찍어내기식' 처방을 하는 일부 한의원에 대한 의견은?

"물론 한의학에도 특정 질환에 잘 듣는 특효방은 있습니다. 그러나 매우 인지도가 높은 처방이 획일화된 것이라는 인상을 대중에게 준다면, 개개인의 체질과 증상에 맞게 처방을 하고 있는 수많은 한의사들로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체로 획일화된 처방이라면 맞춤형 처방보다 치료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으며, 치료효과에 대한 불만은 한의학계 전체로 돌아갈 겁니다. 그렇게 해서 한의학에 대한 불신이 높아진다면 국민건강에도 마이너스가 되겠지요. 치료효과에 대한 근거나 객관적인 검증없이 어떤 질환에는 뭐가 좋다는 식으로 광고에만 열을 올리는 소수의 한의원들이 자칫하면 한의학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고 생각합니다."

-한약으로 진료, 치료한 환자 중 기억에 남는 사례는?

"틱장애 아동 중 한 명인데, 욕설틱이 심해 수업시간에도 욕설을 해 수업이 방해를 받을 정도로 틱증상이 심했습니다. 양방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한방치료를 통해 결국은 정신과 약도 중단했고 틱증상도 나았던 아동이 있었습니다. ADHD로 내원한 남자 중학생이었는데, 주의력검사를 해보니 초등학교 1학년보다 더 좋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치료를 시작하고 1년 정도 지났을 때 주의력검사 재검에서 모두 정상판정을 받았고 학교나 집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같은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졌다고 합니다."

-수인재한의원에서 주로 하는 진료분야는?

"틱·ADHD·난독증·발달장애 등 두뇌질환을 전문으로 진료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의학·심리학·인지과학을 전공한 것을 활용하여 실제 임상에서도 한의학과 두뇌과학적인 방법을 결합해 진료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인지 치료효과가 매우 높습니다."

-한약으로 틱장애를 치료할 수 있나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치료가 잘 됩니다. 틱장애는 현대에 처음 생긴 것이 아니며, 인류역사이래 오랫동안 있어왔을 것입니다. 따라서 한의학 서적을 보면 아마도 틱장애를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그런 증상들이 여러가지 나오며 치료법도 상세히 기술돼 있습니다. 한의학이 정신과질환을 치료하는 것이 생소하다고 느끼시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치료가 잘 됩니다. 또 정신과질환의 치료에서 흔히 동반되기 쉬운 약물에 대한 부작용도 거의 없습니다."

-한약에 대해 오해하는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진료를 하다보면 환자분들은 한약재가 간에 부담을 주지는 않을까, 중금속이나 농약이 검출되는 것은 아닐까 등등 한약의 안정성에 대한 걱정을 많이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한약이 간에 부담을 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 역시 딸이 5세일 때 한약을 복용시킨 적이 있는데 1개월만에 증상이 나아졌지만, 딸아이가 계속 한약을 먹고 싶다고 하여(파우치의 동물그림을 보고 '동물주스'라고 하더군요) 그 후로도 2개월간 추가로 한약을 계속 복용시킨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자녀가 둘인데 아내가 임신했을 때마다 임신에 좋은 보약을 몇 제씩이나 지속적으로 복용시켰습니다. 한약에 대한 안정성을 알고 한약이 얼마나 깨끗하게 관리가 되는지를 알기 때문에 자신있게 복용시켰습니다. 임신한 아내에게, 자녀에게 복용시키지 못하는 한약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도 한약을 처방해서는 안되겠지요. 한약재는 깨끗이 관리되고 있으며 간에 부담을 주지도 않습니다. 안심하고 복용하시기 바랍니다."

▶안상훈 원장은…

-현, 수인재한의원 원장
-현, ㈜수인재두뇌과학 대표

-경희대학교 한의학과 졸(학사)
-경희대학교 한의학과 대학원졸(석사)
-경희대학교 한의학과 대학원졸(박사)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인지과학 협동과정(박사 수료)
-경희대학교 한방병원 일반수련의 수료
-경희대학교 한방신경정신과 대학원 외래교수

-중앙일보 선정 우수한의원
-뉴스메이커 선정 2013년 대한민국을 이끄는 혁신리더 수상(의료부문)
-스포츠조선 선정 브랜드파워 대상(의료부문)
-시사투데이 선정 올해의 존경받는 인물 대상(의료인 부문)
-해동검도 지정주치의(분당, 구성지역)
-현대증권 의료자문(분당지점)
-사단법인 대한전통무학회 이사
-해동검도 총연합회 명예이사
-우리한약재 되살리기 운동본부 감사패
-황제의학 논문대회 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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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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