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측과 무기회수 방법 등 절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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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대책
22일 낮12시께 부터 광주시 금남로에 모인 시위군중 가운데 자체수습위원회를 구성, 대책회의에 들어갔다. 이들은 윤공희 대주교를 위원장으로, 변호사 등 유지들은 고문과 위원으로 하여 수습책을 마련중이다.
수습위원회는 우선 시민들이 갖고 있는 총기·탄약을 비롯한 군장비를 일단 회수하면서 지역계엄당국과 수습방안을 협의할 계획이다.
자체수습위원회의 위원장 윤주교를 비롯, 조기오 신부·박윤종 적십자사 전남지부장·이종기 변호사 등 시민을 대표한 6명의 위원과 학생대표 2명 등은 이날 낮12시부터 전남도청 부지사실에서 정시채 부지사 등 도청간부 3명과 만나 대책을 협의한 뒤 하오1시30분쯤 전남북 계엄분소로 가 시위군중들의 요구사항을 제시하는 등 하오4시 현재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
발단
지난17일 서울이대에서 있었던 ▲계엄확대 ▲휴교령 ▲특정정치인연행 등에 항의, 시위를 하기 위해 18일 상오 10시쯤 전남대학생 4백여명이 교문앞에 모였다.
학생들이 가두로 진출, 도청앞 광장을 점거하려 하자 경찰이 최루탄으로 이를 제지하면서 투석전이 벌어졌다.
18일 하오 3시30분쯤 광주시내 중심가인 충장로와 금남로에 병력이 투입돼 4∼5명이 1조가 돼 이 일대를 오가는 학생· 시민들을 단속, 이곳에서 부상했다. 이 때부터 시민들이 학생시위에 가담, 사태는 시민소요로 번져갔다.
시위양상
하루 최고 수만명이 가두로 몰려나온 이번 시위로 시위지역, 특히 광주시내는 곳곳에서 밤낮으로 불길과 연기가 치솟아 하늘을 뒤덮었으며 시위군중과 학생들은 『계엄철폐』·『김대중석방』·등 구호를 외치며 장갑차 등 출동군의 장비를 비롯, 각종 차량을 빼앗아 도심지를 질주하고 있다.
시위 군중들은 각목·쇠「파이프」·돌 등을 들고 파출소 등을 파괴했으며 20일에는 영업용 「택시」와 「버스」 등 70여대가 시위군중을 호위하기도 했다.
군경의 대치양상에 따라 파상적 시위를 벌여 온 시위군중들은 21일부터 각 기관 예비군 무기창고 등에서 가져온 수천여정의 총기와 수만발의 실탄·수류탄, 그리고 인근 탄광에서 운반해 온 대량의 「다이너마이트」 등으로 일부가 무장해 수차례나 군경과 총격전을 벌여 한차례 충돌할 때마다 수많은 사망자를 내고 있다.
시위군중들은 21일 하오 전남의대 옥상에 설치된 대공화기를 점거해 약300m 떨어진 전남도청을 향해 발사, 수십명의 사상자를 낸 끝에 22일 낮 전남도청을 점거했다.
목포 등지에서도 각목·쇠「파이프」·총 등을 든 시위군중들이 탈취한 차량을 타고 다니며 무기고를 탈취하고 공공기관을 파괴했다.
진압양상
광주시내에는 18일부터 계엄당국은 공중전단살포와 항공방송을 통해 시위 군중들에게 자제할 것을 호소하는 한편 충돌할 때는 가차없는 진압 방법으로 대치하고 있다.
광주 이외의 소요지역에는 군부대가 투입되지 않고 있으며 목포에서는 21일 하오 경찰마저 철수해 버려 시위군중들과의 충돌이 없었다.
협상
21일 상오 10시쯤 장형태 전남지사와 구능상 광주시장이 「데모」군중의 요청으로 금일 남로3가에 나와 시위군중과 처음으로 만났으나 협상은 실패했다.
시위군중들은 이 자리에서 ①계엄분소장 및 도지사는 계엄군 투입에 대한 공개사과 ②계엄군 완전철수 ③주동자 및 참가자에 대해 처벌 않을 것 등을 요구했다.
장 지사는 ③항을 제외한 나머지 사항을 들어주겠다는 뜻을 비쳤으나 협상도중 군중들이 돌을 던지며 욕설을 퍼부어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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