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농림지 아파트 사실상 중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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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대형주택업체인 A사는 지난해 하반기 경기도 용인 동백지구 인근 준농림지 8천여평에 아파트를 짓기 위해 국토이용계획변경(이하 국변) 절차를 밟던 중 사업 추진을 보류했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사업승인을 받는 게 목표였는데 인허가 절차가 까다로워져 1년 이상 사업이 늦어지는 바람에 금융비용이 불어나 분양가가 높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수도권지역 아파트의 주요 공급원이던 관리지역(과거 준농림지) 아파트 신규 사업이 거의 중단됐다. 종전 같으면 아파트 사업 절차가 빨리 진행됐으나 지난 1월 '선계획.후개발'을 골자로 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이하 국토계획법, 도시계획법과 국토이용관리법 통합) 이 시행되면서 웬만한 아파트 사업은 지구단위계획을 세워야 하는 등 사업추진이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주택업체들은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주택 공급량이 줄어들어 2~3년 후에는 집값이 크게 오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원인은 뭔가=올 들어 수도권에서 주택사업이 거의 동결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1만㎡(3천30평) 이상 토지의 형질변경 때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하고 지구단위계획을 세우도록 한 것이다. 종전에는 1만㎡ 이상 토지는 주택건설촉진법에 따라 사업승인만 받으면 도시계획법상 형질변경이 된 것으로 보고(의제처리-관련 법의 심의를 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 아파트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런데 국토법에서 1만㎡ 이상 토지에 대한 의제처리 근거가 사라져 지구단위계획을 세워야 하는 등의 이유로 아파트사업이 거의 중단된 것이다.

이 때문에 건설교통부는 새로 만드는 주택법에 '사업승인을 받으면 1종 지구단위계획을 통과한 것으로 본다'는 내용을 삽입했다. 하지만 이 또한 도시지역내 토지에만 적용되고, 준농림지 비율이 높은 비도시지역은 제외된다. 그나마 이 법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다른 하나는 관리지역에 땅을 확보한 업체들의 사업이 힘들어졌다는 것. 국토법은 준농림지를 관리지역으로 바꾸고 해당 지자체는 이 곳을 2005년까지 보전관리.생산관리.계획관리지역으로 세분화하도록 했다.

아파트를 지으려면 땅이 계획관리지역에 속하고 면적도 30만㎡(9만9천평)를 넘어야 한다. 한 중견주택업체 관계자는 "9만평이 넘는 땅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고 지구단위계획 등의 절차를 밟을 경우 사업기간이 종전보다 1~2년 이상 길어진다"고 말했다.

대한주택건설사업협회에 따르면 용인.파주.오산.화성 등 수도권의 45만여평에 달하는 준농림지가 이같은 이유 등으로 아파트 사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30평형대 아파트 3만여가구를 지을 수 있는 면적이다.

관리지역 세분화 작업이 끝나기 전까지는 계획관리지역에 준해 인허가를 내줘야 하지만 일선 공무원들도 사실상 일손을 놓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관리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심의 요청이 들어온다 해도 사업인가를 내주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집값 오를까 말까=업체들은 아파트 사업승인 규모가 줄고 준농림지 내에서 사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2~3년 후에는 공급부족으로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말한다. 국토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1997년부터 마구잡이개발 문제가 불거진 2000년까지 공급된 수도권(서울 제외) 아파트 중 준농림지 내 물량이 전체의 25%에 이른다.

사업 기간이 길어지면 땅값과 금융비용 상승으로 분양가가 오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D건설 관계자는 "행정절차가 종전보다 빨라야 6개월, 늦으면 2년 이상 더 걸리는 데 사업추진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분양가도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원칙만 중시하고 현실은 무시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박사는 "선계획.후개발이라는 취지는 좋으나 경제성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주택공급 부족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택산업연구원 장성수 박사는 "정부가 추진 중인 주택저당채권유동화 제도는 주택 수요를 늘리는 쪽인데 국토법이 공급을 사실상 줄여 정책이 엇박자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주택보급률이 늘었고, 외환위기로 줄었던 공공택지개발 공급 물량이 2001년 이후 증가추세에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책임연구원은 " 서울엔 장지.발산 등 택지지구가 있고, 수도권에는 송도.김포매립지.영종도 등 개발되지 않은 넓은 땅이 있으므로 준농림지에다 아파트를 지어 마구잡이개발을 유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위원은 "올 한해 택지공급의 병목현상이 나타나고 건설회사의 신규 수주에 애로가 있겠지만 집값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며 "2001년과 2002년도에 공급한 아파트와 다가구.다세대 주택, 주거용 오피스텔 물량이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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