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유대인 증오 않는다 … 그들과 평화롭게 살고 싶을 뿐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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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시자이야 지역에서 한 소년이 베개를 들고 폐허가 된 거리를 지나가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이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12시간 동안 전투를 중단했다. [시자이야 AP=뉴시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가 통치하고 있는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18일째 이어지면서 26일 현재 민간인 사망자 수는 10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어 희생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유엔 등 국제사회가 양측의 휴전 중재를 위해 분주하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입장을 듣기 위해 25일 왈리드 시암 일본 주재 한ㆍ일 겸임 팔레스타인 대사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시암 대사는 팔레스타인 내 동아시아 전문가로 2003년부터 대사를 맡고 있다.

왈리드 시암

-최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숨졌다.
“희생된 팔레스타인인은 대부분 어린이와 여성 등 민간인이다. 이스라엘의 공격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 이스라엘은 자위권을 명분으로 가자지구를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법에 따르면 자위권은 국가 대 국가 사이에서 주장할 수 있는 권리다. 팔레스타인은 서안지역과 가자지구로 나눠져 있다. 가자지구는 국가가 아니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이스라엘군에 의해 민간인들이 희생된 것을 전쟁범죄로 다뤄야 한다.”

-2008~2009년에도 1400명이 숨진 가자전쟁이 벌어졌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은 단지 가자전쟁 등 특정 분쟁으로 국한할 수 없다. 전쟁은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양측은 지난 20년 이상 상대 국가를 인정하는 ‘2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을 협상해 왔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이 방안에 찬성한다. 군사적인 힘이 아닌 평화로운 방법으로 갈등이 해결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양측의 국경이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영토를 넓히기 위해 국제법에 위반되는 유대인 정착촌을 꾸준히 확장해 왔다. 이에 따라 2국가 해법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양측의 분쟁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각도 공평하지 못한 점이 있다. 분쟁의 원인인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영토 점령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당장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만 대처하고 있다.”

-가자지구 봉쇄 문제가 이번 분쟁에서도 핵심 이슈다. 팔레스타인은 봉쇄로 인해 생필품조차 주민들에게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스라엘은 무기 공급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는데.
“가자 주민 170만 명은 지난 7년간 이스라엘의 봉쇄로 사실상 감옥에서 살고 있다. 하마스 문제이건 어떤 이유에서건 봉쇄는 정당화될 수 없다. 게다가 이스라엘군의 불법적인 국경 통제로 서안지역과 가자지구 간 왕래조차 힘든 상황이다. 500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자유를 억압받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2005년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감시하에 총선을 실시했다.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수반을 지도자로 선출했다. 하마스도 상당수의 의회 의석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강경파인 하마스가 합법적으로 의회에 입성하자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이 주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강경파가 이번 분쟁을 격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있는데.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는 연립정부다. 이 연립정부에서 강경파들은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다. 이들은 반(反)아랍·반팔레스타인·반평화주의·반인도주의 정책을 고수하려는 세력이다. 강한 이스라엘을 표방하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는 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더욱 강경한 정책을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강한 정부가 결국 무고한 팔레스타인인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정치 문제 외에 이스라엘의 다른 속셈은.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하려는 것이다. 유대인 정착촌의 확대에 제동을 걸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는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의 평화 정착을 위해 추진하는 2국가 해법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이스라엘은 아랍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사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다. 유일한 유대국가 존재가 그들의 최종 목표다.”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해 유럽 국가들은 비난하고 있다. 반면 미국 정부는 지지의사를 밝혔다.
“미국 의회는 유대인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번 분쟁은 인권에 관한 문제다. 정치나 비즈니스가 아니다. 인권을 외면하고 있는 이들은 비양심적인 사람이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 대항할 만한 군사력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세계 10위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도 갖고 있다. 이에 반해 팔레스타인의 군사력은 미미하다. 이·팔 문제는 원래 제1차 세계대전 후 영국의 통치로 인해 발생했다. 영국이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모두에게 국가를 건립하도록 해 주겠다고 약속한 데서 비롯됐다. 현재 600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인이 자신의 땅이 아닌 요르단 등에서 난민생활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이번 공격을 통해 하마스의 군사ㆍ정치적 입지 약화를 노린다는 분석이 있는데.
“잘못된 판단이다. 이번 공격으로 오히려 팔레스타인인들은 똘똘 뭉치고 있다. 서안지역과 가자지구 주민 모두 ‘팔레스타인 저항(Palestine resistance)’이라는 기치 아래 반이스라엘 전선에 나서고 있다. 하마스를 뿌리 뽑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팔레스타인인을 모두 죽이기 전까지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지난 4차례의 중동전쟁을 포함한 수많은 분쟁을 통해 증명됐다.”

-왜 분쟁이 끝나지 않나.
“우리는 유대인들을 증오하지 않는다. 우리의 종교인 이슬람교도 유대인을 적대시하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유대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 때 대량 학살당한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도 비난한다. 유대인들과 평화로운 이웃으로 함께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우리 땅을 꾸준히 불법으로 점령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불법을 행하는 이스라엘 정부에 대해 대항하는 것이다. 자신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한 사람에게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유대인 친구가 많다. 이들도 이스라엘 정부에 불법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현대사에서 영토를 70년 동안이나 불법 점령 당하고 있는 나라는 팔레스타인밖에 없을 것이다.”

-가자지구의 현재 상황은.
“이스라엘 탱크와 전투기들이 가자지구 전역을 공격하고 있다. 특히 북부는 농경지역인데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황폐화되고 있다. 분쟁이 끝난 뒤에도 자급자족을 해야 하는 가자 주민들에게는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친척들에 따르면 생필품은 물론 의약품과 물도 절대 부족한 상황이다. 가자지구는 지금 지옥과 같다고 한다. 네타냐후 총리는 드라큘라다. 사람들의 피를 빨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인물이다.”

-하마스는 왜 휴전을 거절했나. 민간인 희생을 통해 아랍권 등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전략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하마스 지도부는 휴전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과거사를 볼 때 어제 휴전협정을 맺어도 다음 달 다시 서로를 공격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가자지구에서는 많은 민간인들이 죽었고 5000명 이상이 부상했고 1800채 이상의 건물이 파괴됐다. 이렇게 처참하게 공격을 당한 입장에서 조만간 다시 발생할 분쟁에 대해 일시적으로 휴전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분쟁이 계속될 경우 팔레스타인 정부의 대응은.
“국제형사재판소(ICC) 등 가능한 한 모든 국제기구에 이스라엘의 만행을 제소할 것이다. 유엔은 이미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공격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또 국제적인 조사단을 꾸려 현장에 파견키로 했다. 우리는 유엔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이스라엘이 공격을 계속한다면 아랍권 국가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를 ‘아랍 쓰나미(지진해일)’로 부르고 싶다. 또 다른 대규모의 중동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그동안 반목하던 팔레스타인의 두 정파인 파타와 하마스의 통합정부가 출범했는데.
“국제사회에서 한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통합정부가 필요하다. 또 관료나 기술인력 등 전문지식을 가진 집단들이 통합될 경우 더욱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네타냐후 정부는 팔레스타인 통합정부 구성을 내심 원치 않았다. 분열된 팔레스타인이 더욱 다루기 쉽기 때문이다. 국제사회가 우리의 통합정부에 대해 지지를 보낸 만큼 새로운 정부를 통해 효율적인 국가 운영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모든 팔레스타인인의 평화와 정의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한국과 팔레스타인의 협력 증진을 위해서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100만 달러 상당의 인도적 지원을 약속한 것에 깊이 감사한다. 한국은 안보에 위협을 받는 분단국가이지만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이런 경험을 전수받는 게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한국의 건설 기술은 팔레스타인의 공항과 도로 등 인프라 확충에 필요하다. 한국 기업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한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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