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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이 시대 진정한 구라쟁이 10명의 '골방' 엿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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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단독자
원재훈 지음, 올림
272쪽, 1만3000원

이 책은 저자가 신문에 기고했던 ‘조선의 3대 구라’란 짧은 글에서 시작했다. 조선에 3대 구라가 있으니 소설가 황석영, 방랑주먹 ‘방배추’ 방동규, 재야운동가 백기완이다. 저자는 이들에 대해 ‘조선의 선비 정신인 퇴계나 율곡 같은 울림이 있는 구라, 이 시대를 대변하는 또 다른 호인 구라’라고 썼다. 여기서 구라는 거짓말을 뜻하는 속어가 아니다. 시장 논리에서 벗어나 절박한 ‘거시기’가 있는, 인생 역정의 이야기다. 진정한 구라에는 인생·지성·경륜이 묻어난다.

 저자는 아예 이 시대 10명의 구라를 만나보기로 한다. 이어령·김주영·한대수·황금찬·유홍준·방배추·강신주·최경한·신달자·이윤택이 주인공이다. 책 제목인 ‘단독자’는 진정한 ‘구라쟁이’의 고급스런 표현이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문장 속에서 빌려왔지만 단독자에 대한 저자의 정의는 이렇다. ‘나 자신을 바로 보고 타인과 관계 맺는 사람. 이 눈치 저 눈치 보지 않고 묵묵히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는 사람.’

 저자는 10인을 차례로 만나 단독자로 사는 삶에 대해 묻는다. 단독자이므로 대개는 고독한 순간의 이야기다. 이들에게 고독은 천형이면서 축복이다. 운명이다.

이 시대 지성으로 꼽히는 이어령은 현대인의 비극을 “혼자 앉아서 견디는 시간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말한다. 식민지 시절 태어난 이어령에게 스승은 없었다. 자연과 책만이 스승이었다. 내면에 존재하는 방에서 혼자 견디며 훈련했다. 명저 『우상의 파괴』는 그렇게 나왔다. 가수 한대수는 어떤가. 방랑가객으로 살던 한대수는 환갑에 어린 딸과 알콜중독의 아내를 보살피는 생활인이 됐다. 저자는 신촌 뒷골목 모텔촌 사이 계단을 올라 집으로 향하는 한대수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본다. 그의 음악은 고독과 소외의 언어를 메운 자리에서 발아한다.

 연극인 이윤택도 철저한 개인주의를 부르짖는다. 문화게릴라로 살아온 이윤택은 “원래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지만, ‘별 볼 일 없는 인간’이란 소릴 들으면 무서운 저항의식이 생긴다”고 했다. 그것이 이윤택의 힘이다. 정치, 경제적인 명성이나 권력으로 남에게 군림하는 게 아니라 저항하면서 게릴라처럼 치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생일대의 구라를 푼다. ‘인간은 별 볼 일 없이 태어났어도, 별 보는 사람이 되는 거다.’

 단독자 10인의 세계는 각자의 골방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그 힘은 우주로 뻗어나간다. 우리는 그 우주를 더듬으며 고독을 견딘다. 단독자는 단독자끼리 통하는 법이니까.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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