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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GM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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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고려대 명예교수

무분별한 온실가스 배출로 인간이 저지른 지구의 대재앙을 예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식량 문제가 심각하다. 기후온난화로 인도와 동남아의 쌀 생산량이 줄고 있다. 이대로 진행되면 반세기 후에는 세계 인구가 현재 70억에서 90억 명으로 증가하는데 세계 곡물 생산량은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남아시아의 곡물 생산은 20% 감소한다고 한다. 중국은 이미 식량 수입국으로 전락해 콩은 연 5000만t(우리는 120만t), 옥수수도 연 500만t 이상 수입하고 있다. 경제가 성장해 중국의 14억 인구와 인도의 12억 인이 우리처럼 동물성 음식을 먹으면 세계시장에 나오는 곡물을 싹쓸이해도 모자란다는 계산이 나온다. 돈이 있어도 사 올 식량이 없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암울한 세계 식량 전망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생명공학에 의한 신품종 개발이라고 과학자들은 믿고 있다. 고온에서 잘 수확되는 벼, 가뭄에 견디는 옥수수와 밀 등을 개발하는 것이다. 예컨대 추위에 잘 견디는 품종을 개발해 시베리아와 캐나다 북부 동토지역에서 밀과 옥수수를 수확하고, 내염성 종자를 개발해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져 바닷물에 잠기는 경작지에서 수확물을 생산한다면 앞으로 예견되는 식량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이러한 목적으로 생명공학에 의한 유전자변형(GM) 품종 개발이 21세기 들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1993년부터 상용화된 유전자변형작물(GMO)은 지난 20년간 크게 범위가 확장돼 병충해 저항성 옥수수와 제초제에 잘 견디는 콩·카놀라가 미국·캐나다·브라질·아르헨티나 등지에서 대량 재배되고 있다. GMO는 현재 전 세계 콩의 73%, 옥수수의 30%, 카놀라 경작지의 25%에서 재배되고 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콩과 옥수수는 90%가 GM 품종이다. 미국의 3억 인구가 이들 GMO를 재래종과 동등하다고 인정해 아무 표시 없이 지난 18년간 먹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이들 곡물을 먹고 이상반응을 보인 사람이 없다. 최첨단 과학의 힘을 빌려 철저한 안전성 시험을 거쳐 사용이 허가된 GMO는 먹어도 된다는 게 이미 입증된 것이다.

 GM 기술을 프랑켄슈타인처럼 경계하던 그동안의 우려도 많이 가라앉고 있다. GMO 반대운동을 주도해 온 영국의 환경운동가 마크 라이너스가 2013년 1월 옥스퍼드 농민대회에서 그 반대운동이 잘못이었음을 시인하고 공개 사과했다. 과학을 무시한 자신의 행동으로 농업에 생명공학기술을 사용하는 데 제동이 걸리고, 기아에 굶주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식량 공급을 어렵게 만들었음을 시인하고 용서를 빈 것이다. 지난해 6월 한국을 방문한 그는 ‘GMO의 과학적 진실’이란 강연을 통해 식량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한국이 유럽의 표시제를 따르려는 움직임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유럽은 GMO의 안전성 논란을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는 무역장벽으로 적극 활용해 왔다. 세계무역기구(WTO) 무역자유화 이후 외국에서 들어오는 값싼 곡물을 막을 수 없게 된 유럽은 GMO 표시제로 수입을 제한하고 있다. 유럽은 자체 생산한 곡물로 충분히 자급할 수 있으므로 수입 물량을 가급적 막아야 자국의 농업을 유지할 수 있다. GMO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은 국익에 부합하는 일이었다. 유럽의 학자들도 GMO 표시제도는 정치적 이슈이지 GMO의 안전성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와 같은 처지의 일본이나 대만도 유럽의 표시제를 따르지 않고 있다. 이들 국가도 GMO 식품 표시를 현재 수준보다 더 확대하면 식량 공급에 문제가 생긴다. 세계 곡물시장에서 사 올 수 있는 비유전자변형(non-GM) 곡물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마치 먹을 수 없는 것처럼 겁을 주고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은 범죄행위이며, 식량위기의 시대에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아프리카 잠비아에서는 국민 대부분이 기아로 굶어 죽고 있는데도 미국에서 원조한 식량이 GMO라는 이유로 받기를 거부한 어이없는 일도 있었다. 라이너스가 GMO 반대운동에 대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이유다.

 앞으로 예견되는 세계 식량위기는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극복할 수도 있고 극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생명공학기술의 적극적인 이용으로 온난화에 의한 아시아 지역의 쌀 생산 감소를 막고, 러시아와 캐나다의 동토지대에서 밀을 재배하고,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의 건조지대에 가뭄에 견디는 옥수수를 기르고, 강 하구의 옥토에 염분에 강한 작물들이 자라나게 한다면 우리는 세계적인 식량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거꾸로 GMO에 대한 불안감을 계속 증폭시키면서 당장 먹을 수 있는 GMO조차 수입을 막는다면 스스로 식량안보에 큰 구멍을 내고 국가적인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