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자중지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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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실은 「뉴델리」사건이 부각되기 전 자유당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것은 개헌반대라는여론의 추세에 편승한 일부의원들이 이탈 기미를 보인 것이다.
갈등은 자유당 중앙당부(원외) 와 의원부(원내)사이로 번져 갔고 의원부 내에도 진안보선의 후보 공천문제를 두고 분파현상이 나타났다.
진안보궐선거는 당 공천으로 당선된 이복성이 사망함으로써 실시됐는데. 이기붕의장등 원내지도부에서는 무소속의 박정근을 당선시켜 입당시키려는 속셈이었다.
이에반해 손권배(완주을) 양영주(남원)등 75명은 이기붕의「라이벌」인 배은희를 공천해 후보를 내야한다고 주장해 이기붕체제와 중앙당을 향해 도전의 자세를 취했다.
개헌안공고기간이 지났는데도 당내불화는 좀채 수그러질줄 몰랐다. 드디어 의원부에서 중앙당부에 대한 불신임안을 당총재인 이승만박사에게 제출했다.
불신임이유는 중앙당간부가 양담배사건등으로 가지가지의 추태를 보인데다 당을 독선적으로 운영했다는 것이었다. 개헌안상경을 앞두고 이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중앙당부도 일보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앙당부는 부·차장회의를 열고 조건부로 전원 사임 결의를했다. 그 조건이란 ⓛ사표는 일괄제출하나 퇴임은 개헌안 통과와 때를 같이하며 ②개헌안을 조속히 국회에 상정, 표결할 것과 ③사표제출과 동시에 의원부는 개헌추진 업무외에 당헌개청요구등을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의원부는 의원부대로 개헌안을 빨리 상정해야한다는 주장파와 상정지연파로 견해가 갈려 팽팽히 맞섰다. 조속상정을 주장하는 측은 일단 공고가 끝난 안건을 무작정 지연시킨다는 것이 국민들로부터「자신이 없다」는 의심만 사게할뿐 아니라 소속의원들의 기강이 해이되어 결국에는 통과에 불리한 여건만 가중시킨다는 것이었다.
반면 상정지연을 주장하는 측은 당논의 대립을 그대로 두고 이를 상정한다면 통과보다 부결될 우려가 없지 않으므로 먼저 당론을 통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이박사는 돌연 개헌안을·일괄표결하느니보다 조항별로 표결하는 대책을 세우도록 변영태총리와 자유당 간부들에게 지시했다., 이에따라 이기붕의장과 변총리를 비롯한 정부·여당간부들은 연석회의를 열고 이박사의 지시사항을 검토했는데, 법률적으로 어렵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최종 결정을 의원부에 일임했다.
이 소식을 들은 이박사는 이기린·최정주·이재학·황성수등 원내간부들을 경무대로 불러 국민투표제의 필요성을 특히 강조하면서 영·미법의 이론을 인용해 조항별 표결을 재고하도록 독려했다.
재차의 지시에도 의원부의 움직임이 신통치않자 이박사는 10월21일 비서실을 통해 자유당의원 전원을 경무대로 초청했다. 이는 이기붕등의 간청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이박사에게 설득과 결심을 부탁한 것이었다.
이박사는 이 자리에서 담화를 발표했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전국회는 이번 국회와 달라서 정부를 전적으로 반대하는것이 나라를 돕는 것으로 생각했다. 지난 선거에서 이런 사람들은 거의 다 떨어지고 반정부자는 소수가 되어 지금까지 그 사람들이 국회 내에서 반대하는 사람으로 행세하고 있는것이니…보통 사람들이 믿고 희망하는 것은 정부에서 주장하는 개헌을 충분히 해결시켜…또 다시 2년전 소위 정치파동이라는 난국을 만들게 된다면 소련의 병력과 중공의 세력으로 또 일본의 흉모로 해서 이들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 지하공작이 생길 수 있고…개헌을 반대하는 사람은 그 나라 국권을 회복하고자하는 생각은 없고 외국의 재정지원이나 세력을 얻어 국권을 동요시키자는 반역사상을 가진 것으로…』
이박사는 특히 이 담화에서 초대대통령의 3선조항 철폐 문제에 언급,『그 호의는 알겠으나 그렇게되면 치욕은 될지언정 영광이라고는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부탁하는 바는, 이것을공의에 붙여서 무슨 조치가 되든지 원만히 판결되기를 바라는 것이니, 이 문제는 이번 개헌의 가·부결에 의하여 노력하거나 분투하지 말고 공결만을 기다려 행하기를 부탁한다』고 밝혔다.
대신 이박사는 국민투표제의 중요성을 더 강조해 자신의 집권과 직접 관련된 3선조항은가볍게 넘기려는 인상을 주려고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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