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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디즈니』는 31개나 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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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금년도「아카데미」상 시상식이 14일로 다가왔다. 세계영화「팬」들은 올해의 영광이 누구에게로 돌아갈지 관심을 갖고 있다. 미국의 「아카데미」영화상은 미국 배우들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영화인들이 선망하는 권위와 영광의 상이다. 올해로 51년의 역사를 지닌 「아카데미」상에 얽힌 기록과 화제를 살펴본다.
일명 「오스카」상으로도 불리는 이 상은 그 엄정한 심사에도 불구하고행 운이란게 따르게 마련이다. 그것은 수십년 영화생활에 여러차례나 후보에 올랐으나 한번도 수장하지 못한 배우가 있는가하면 불과 몇편의 영화로 「아카데미」상을 따낸 행운아가 있기 때문이다. 부녀배우로 유명한 「헨리·폰더」와 딸 「제인·폰더」가 그 한 예다. 「제인·폰더」가 경력이나 연기력에 있어서 아버지 이상일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그러나 「제인·폰더」는 지난해 최우수여우상을 수상, 영광의 「트로피」를 안았다. 이에 반해 세계적인 명우 「헨리·폰더」는 지금껏 한번도 수상하질 못했다. 「아카데미」사상 최고의 수상켱경을 가진 사람은「월트·디즈니」. 그가 받은 상은 무려 31개나 된다.
1929년 「아카데미」상이 제정된 이래 가장 나이 어린 수상자는 누구일까. 여배우 「테이텀·오닐」이 그 주인공인데 그녀는 『페이퍼·문』이란 영화로 최우수 여우 조연상을 탔는데 그때의 나이가 불과 10살. 그러나 가장 어린나이에 주연남우상 후보로 지명됐던 배우는 『스키피』라는 영화에서 열연했던 「재키·쿠퍼」로 당시 나이 9살이었다.
「아카데미」상 후보에 가장 많이 올랐던 배우는 「캐더린·헵번」. 그녀는 11번이나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3번이었다. 이밖에 「스펜서·트레이시」가 9번 후보에 2번, 「로런스·올리비에」가 8번 후보에 1번, 「말론·브랜도」가 7번 후보에 2번, 「그리어·가슨」 이 7번 후보에 1번, 「잉그리드·버그먼」이 6번 후보에 3번, 「리처도·버튼」이 6번 후보에 1번 수상했으며 「데버러·커」는 6번 후보에 올랐으나 한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51년동안 각분야에 주어진 「아카데미」상은 1천4백88개.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상을 받아낸 영화는 『벤허』로 11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다. 이와 함께 『네트워크』란 영화는 남녀주연상과 여우조연상을 타 화제가 됐었다. 이밖에 가장 많은 부문의 상에 후보로 꼽혔던 영화는 『「이브」에 관한 모든 것』이란 작품으로 모두 14개 부문에서 수장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실제 수상은 6개 부문이었다.
배우이면서 연기상이 아닌 각본상을 받은 배우들이 있어 이채. 『제작자들』이란 영화의 각본을 맡았던 「멜·부르크스」와 『애니·홀』의 각본을 쓴 「우디·앨런」, 그리고 『시민 「케인」』의 각본을 쓴 「오슨·웰즈」가 그 주인공들이다.
배우로서 감독·주연을 겸한 배우가 많은데 「로런스·올리비에」「폴·뉴먼」「클린트·이스트우도」「워런·비티」등이 바로 그들. 그러나 이가운데 「로런스·올리비에」만이 『햄릿』으로 작품·주연상을 수상했다. 연기상부문에서 주연상과 조연상의 2개 부문을 따낸 실력파 배우로는 「잉그리드·버그먼」과 「핼런·헤이즈」 그리고 「재크·레먼」 3명뿐이다.
「아카데미」상에서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이 투표에서 동수가 되어 두명의 주연상을 낸 일이 두번 있다.
1932년 『챔피언』의 「윌레스·비어리」와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프레드리크·마치」가 남우주연상을 공동으로 수상했으며 1968년 『겨울사자』의 「캐더린·헵번」과 『퍼니·걸』에서 「바브러·스트라이샌드」가 함께 주연여우상을 수상했다.
자매배우로서 나란히 상을 타 화제가 된 배우도 있다. 『서스피션』이란 영화에서의 「존·폰테인」과 『여자 상속인』에서의 「올리비어·디·해빌런드」자매가 바로 그들.
남매 「스타」의 수상자는 『자유의 혼』의 「라이어널·베리모」와 『외로운 마음뿐』의 「에델·베리모」로 각각 남녀조연상을 수상했다. 한 영화에서 부자가 수상한 일도 있는데 이는 꼭 두번. 『「시에라·마드레」의 보물』에서 감독상을 받은 「존·휴스턴」과 남우조연상을 탄 그의 아들 「월터·휴스턴」.
그리고 『대부』2편에서 작품·감독·제작가상을 탄 「프랜시스·포드·코폴라」와 음악을 담당했던 그의 아들 「카민·코폴라」부자가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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