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정신 되살려 애향심을 가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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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별신굿중 가장 큰규모>
『쩔렁 쩔렁 쩔렁….』
대기에 매달린 요령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대꼭대기의 꿩털(꿩장목)이 하늘을 향해 푸들거렸다. 마침내 신이 내린 것이다. 동시에 무녀 이어린년할머니(86·별명박언년)와 대장 유상렬씨(83)등 제관, 그리고 2백여명의 구경꾼이 모두 함께 어우러져 『얼씨구』 소리지르며 덩실 춤을 추었다. 『깽깽 깨갱깽』 농악과 삼현육각이 신난다는듯 흥겹게 소리를 높였다.
23일 상오10시35분. 은산별신제 제4일째 상당굿은 대내림(강신)의 진동이 울리면서 절정에 올랐다.
은산별신제는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10개의 별신굿중 강릉단오굿과 함께 규모가 가장 큰 동제다. 원형 그대로라면 15일이나 걸리는 거창한 행사이고 동원되는 인원만 1백50여명.
78년에 열린이후 3년만에 벌어진 이번 향토축제는 비록 7일(20∼26일)로 단축된 것이지만 동민들의 열의와 은산별신제 보존협회(이사장 차진룡)의 정성스런 준비로 열기를 띠었다.
관주도의 어떠한 향토문화제보다 이처럼 동민이 주동이된 상향식의 민간축제가 더욱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은산별신제가 벌어지는 충남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는 3백20여가구(주민3천5백여명)가 모여사는 작은 마을 매달 1, 6일에서는 장이 있고 이조때 역원이 있었던 곳이라 사통팔달하는 교통의 요지다. 은산리 서쪽으로는 은산천이 흐르고 서북쪽으로 별신당이 자리잡은 이 마을의 당산이 있다. 별신굿이 끝난 26일 이후 새로운 장승이 동·서·남·북 마을 어귀에 버티고 서서 이 마을을 지킨다.
어느때부터 시작됐는지 확인할길 없는 은산별신제가 다른 곳의 별신굿과 다른 점이 있다.면 1백여m로 길게 이어지는 장엄한 행렬과 일사 불란한 진용이다. 이 같은 형식은 백제광복을 못 이루고 죽은 복신장군과 도종대사의 원혼을 달랜다는 전실에 걸맞게 짜여졌다. 은산별신굿에 얽힌 전설은 여러 가지가 전해지나 그 대강의 뜻은 이들 백제의 장군을 산신당에 따로 모시고 진혼을 하였더니 해마다 이 동네를 휩쓸던 괴질이 물러갔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질병을 쫓으려는 민속의식이 장군제와 결합, 독특한 이 고장 전통축제로 굳어졌다. 별신이란 산신(또는 토지신)과 다른 수호신을 의미한다. 『백제는 죽었지만 백제정신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긍지와 저항정신이 굿 놀이 속에 맥맥히 흘러 이 고장뿐 아니라 인근사람들을 끈끈하게 결합시키고 있다.

<백m 행렬 부여시가 누벼>
20일 상오9시 출진을 알리는 나팔소리와 함께 떠난 「진대베기」 행렬로 별신제는 시작됐다. 은산 동북쪽 5㎞지점인 청양군 적곡면 분향리에서 이미 점찍어둔 참나무진대(진대·약4m) 4그루를 베어 모든 행사의 제주격인 화주(71·나삼복)댁으로 운반하는 일이다. 둘째날(21일)은 꽃받기(화등운반행렬). 첫날 l백여명에서 꽃등과 꽃다발을 운반하는 12명이 늘었다.
10㎞ 떨어진 부여시내 삼총사에서 신화를 받아오는 의식이다.
「진대베기」와 「꽃받기」가 예비행사라면 셋째날(22일) 하오4시 별신당에서 벌어진 상당제사부터 「굿」은 본격화되고 주민들도 들뜬다. 이때쯤이면 제사를 위해 사흘전에 준비한 조라술(제주)도 익는다. 장군의 은덕으로 3일만에 발효가 다된 속성주다. 산돼지와 산닭에 칼을 꽂고 화주를 비롯, 모든 임원이 초헌·아헌·종헌, 그리고 동민축…. 머리를 조아리며 절은 계속된다.
행렬로 시작해서 행렬로 끝나는 별신제는 행사기간중 7,8차례 마을을 돌며 부락의 안전을 빈다. 행렬은 ①나팔을 선두로 ②영기 ⑧대기(별신대제라고 쓴 농기) ④별신사명기 ⑤24방기와 음양기 ⑥농악 ⑦꽃등과 꽃다발 ⑧제물 ⑨화주 및 육화주(돼지·닭등 육류제물준비·김삼복·66) ⑩사명집사 ⑪선배비장(대장의 전방호위) ⑫삼현육각 ⑩통인 ⑭대장(유상렬·백남용·81) ⑮통인 ?중군 ?후배비장 ?좌수 ?축관 ?별자(21)무녀(이어린년·최매순·19)(22)병사로 이어진다.

<옛날엔 전국왈짜 다모여>
이들은 제사가 시작되기 사흘전부터 목욕재계하고 집앞에는 왼새끼에 백지를 오려 끼워늘인 금줄을 친다. 은산냇가에도 부정타지 말라고 역시 금줄을 드리운다.
「클라이맥스」는 22일 밤의 상당제에서 23일 아침 상당굿으로 고조된다. 무녀가 춤을 추기 시작, 30분안에 대내림이 없으면 제관중에 부정한 사람이 있는 탓이라 하여 모두 은산냇가에 가 목욕재계를 한다.
그러나 이번 굿에는 손녀 최매순양(19·국악고1년)과 함께 이어린년할머니의 무무가 시작되고 30분이 지나자 「감이 왔다」. 『간밤 제사에 온 마을이 보여준 지극한 정성에 신이 감복한 때문에 한번에 강신한 것』이라고 주민들은 감격해했다.
신내림의 감격은 온 마을을 취하게 한다. 장소를 옮겨 이 마을 경로당 괴목 앞에서 벌어진 하당굿은 실질적인 「피날레」. 무녀·제관·임원·동네사람이 모두 서로 덕담을 나누며 온 마을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멋진 굿판이 벌어졌다.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며 25일 독산제, 26일 장승제로 은산별신제는 끝이 났다.
66년2윌 무형문화재 9호로 지정된 이 별신굿은 전국 63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향토문화제의 원형같은 느낌을 준다. 일제때만해도 이날에는 씨름판·줄다리기·줄타기등 남사당놀이뿐 아니라 전국의 왈짜가 모두 모이는 「나이트·클럽」(색주가), 「카지노」(도박판)가 벌어져 흥청댔다. 그야말로 「난장판」.
1년 열두달 쌓였던 울분과 설움을 마음껏 발산하는 우리고유의 「페스티벌」이었다. 형식적으로 보고 보여주는 행사가 아니라 몸과 몸이 부딪치는 「카니벌」이었던 것이다. 행렬을 지켜보던 조종수(70)·이엽(62)할아버지는 『그때와 지금은 비교도 안된다』며 『난장이 벌어지면 온 동네가 시끄러웠다』고 돌이켰다. 군 당국의 재정지원(금년1백50만원)도 좋지만 이날만은 모든 인위적 통제를 풀어 진짜 「우리들의 출제」가 되도록 해주었으면 하는게 이곳 동민들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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