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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술래잡기 시작" … 유병언 도주 중 메모선 검찰 조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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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유병언 회장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 중 일부(왼쪽). 거꾸로 쓰여 있어 거울에 비춰야 글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오른쪽). [사진 시사IN]

유병언(73) 청해진해운 회장으로 추정되는 변사체가 전남 순천에서 발견돼 검경 수사의 방향이 급선회할 전망이다. 검찰은 유 회장이 도피 과정에서 남긴 자필 메모도 입수했다. 수사 당국은 유 회장이 이 메모를 유언장 격으로 남겼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유 회장 검거작전을 벌이고 있는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은 21일 유 회장이 도피 중 작성한 메모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유 회장이 전남 순천 등지를 떠돌던 5월 말에서 6월 초께에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메모는 A4 용지 총 31쪽 분량으로 최근의 심경, 언론에 대한 원망, 유년 시절 회고 등이 적혀 있다. 메모는 특이하게도 거울을 보고 읽어야 해독이 되도록 거꾸로 쓰여 있다. 유 회장은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으로 4년간 징역생활을 한 뒤로 이런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건에는 ‘첫날은 신OO 선생 댁에 지내다가 짧지만 곤한 잠에 휴식을 취했었다’는 구절이 있었다. 이는 유 회장이 금수원을 빠져나온 뒤 경기도에 있는 신모씨 집에 머문 흔적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가녀리고 가냘픈 大(대)가 太(태)풍을 남자처럼 일으키지는 않았을 거야.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인 남자들이 저지른 바람일 거야. 과잉 충성스런 보필 방식일 거야’ ‘아무리 생각을 좋게 가지려 해도 뭔가 미심쩍은 크고 작은 의문들이 긴 꼬리 작은 꼬리에 여운이…’라며 자신이 모종의 음모에 빠져 있음을 시사했다. 유 회장은 특히 ‘눈 감고 팔 벌려 요리조리 찾는다. 나 여기 선 줄 모르고 요리조리 찾는다. 기나긴 여름 향한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면서 검찰의 추적을 조롱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언론에 대한 불만도 메모 곳곳에 나타난다. 그는 ‘방송 진행자의 의도적인 행태에 거짓소리 증인의 작태를 보고 시선과 청신경을 닫아버렸다. 모든 방송에서 이별을 해버렸다’거나 ‘연일 터져대는 방송들은 마녀샤냥의 도를 넘었다’고 적었다. 검찰 관계자는 “유 회장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입수한 문건”이라며 “유 회장의 자필 메모가 맞다”고 말했다.

 한편 임정혁 대검찰청 차장검사는 이날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 기자실에서 세월호 침몰 관련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임 차장검사는 이날 “아직까지 유 회장과 그의 아들 대균씨를 검거하지 못한 점에 대해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구속영장이 새로이 발부됐으므로 추적에 더욱 총력을 기울여 반드시 검거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그간의 수사 결과에 대해 “총 331명을 입건해 139명을 구속했다”며 “유씨 일가 등의 명의로 된 1054억원의 재산을 동결하고 648억원 상당을 가압류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유 회장 검거에 대해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고 비호세력이 많이 제거되는 등 점차 (유 회장의) 활동 범위가 좁아지는 단계”라는 것이다. 이렇듯 조속한 검거에 자신감을 보이면서도 유 회장의 최근 행적이나 새로운 검거 전략 등은 내놓지 못했다. 이에 따라 “검경의 공조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건 초반 ‘부르면 나가겠다’는 유 회장 측 말만 믿었던 검찰은 유 회장 도피 후인 지난 5월 22일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유 회장과 장남 대균씨에 대해 각각 5억원, 1억원의 현상금을 걸기도 했다. 검찰은 이후 유 회장의 도주경로를 파악하는 한편 은신처로 의심되는 구원파 신도 주거지 등 20만 곳을 수색했다. 투입된 경찰만 연인원 145만여 명이었다.

 한편 검찰은 유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해 발부받았다. 유효기간은 6개월이다.

박민제·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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