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7·30 재·보선, 혁신도 새정치도 안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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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선거의 3대 요소는 인물·정당·정책이다. 유권자는 지역의 대표자를 선택할 때 ①후보 개인의 자질과 능력을 알아보고 ②자기가 지지하는 정당과의 관계를 확인하고 ③후보와 정당이 제시하는 정책, 즉 공약을 하나하나 따져본 뒤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게 합리적이다. 열흘이 채 남지 않은 7·30 재·보궐 선거는 15개 국회의원 선거구에 55명의 후보자가 나서 ‘미니 총선’이라 불릴 정도로 규모가 크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무승부로 끝난 6·4 지방선거의 승부를 봐야겠다는 듯 7·30 선거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들이 유권자를 위한 ‘지역 적합성 공천’은 안중에 없이 오로지 중앙정치의 승리주의에 사로잡혀 장기판의 말처럼 후보 공천을 처리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후유증으로 남을 것이다.

 나경원(새누리당·서울 동작을)·권은희(새정치연합·광주 광산을) 후보를 포함해 출마하는 지역구에 주소지를 옮기지 못해 자기한테 투표를 못하는 후보가 9명이나 나온 것은 돌려막기·졸속 공천의 대표적인 사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생소한 지역에 투입된 후보자들이 그 지역 유권자들을 위한 정책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졸속 공약을 내놓았다.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엔 55명 후보자들이 내놓은 핵심공약이 5개씩 실렸는데 허황하거나 부실하거나 급조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동작을의 나경원 후보는 ‘강남의 상권을 동작으로 끌어오겠다’고 하면서 이행시기를 ‘2014년~완공시’, 재원조달을 ‘국비+시비+구비’라고 적어놓았다. 같은 지역의 기동민 후보(새정치연합) 역시 ‘재래시장 살리기 종합대책 시행’이라고 공약하면서 이행시기를 ‘잔여 임기 내’, 재원조달을 ‘국비, 시비, 구비’라고 적었다. 이 지역 노회찬 후보(정의당)는 ‘부자감세 철회와 사회복지세 도입’ 등 여러 개 공약을 나열하면서 이행기간을 ‘임기 내’, 재원조달을 ‘필요 예산의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예산안 반영’이라고 제시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공약이행에 드는 비용을 아무도 산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얼마가 들어갈지도 모르는 사업이니 이행시기가 특정될 수 없고, 재원조달 방식도 뜬구름 잡듯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제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55명 후보자 가운데 78%인 43명이 공약이행에 관한 재원조달방안을 제시하지 않거나 막연히 ‘국비·도비·시비’ 등으로 표기했다고 한다. 6·4 지방선거에 썼던 공약을 재탕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지적도 정당들은 뼈아프게 들어야 할 것이다. ‘도시광역철도 GTX 건설’ ‘빅데이터를 활용한 사회안전시스템 구축’(새누리당), ‘어르신 의료지원 및 복지 확대’(새정치연합), ‘물·전기·가스 무상공급’(통진당) 같은 것들은 무성의한 자기 표절일 뿐 아니라 구체적인 이행수단을 적시하지 않은 재탕 공약들이다. 포퓰리즘 냄새도 물씬 난다. 7·30 재·보선은 인물과 정당끼리 승부는 가려낼지 몰라도 정책에선 이미 모두가 패배한 선거가 돼 버렸다. 이번 선거처럼 혁신도 새정치도 없는 빛 좋은 개살구도 드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