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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련」을 꺾은 「폭발적인 주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김태식의 세계도전은 9연속KO승이라는「펀치」력을 믿으면서도 불안속에 던져진 주사위였다.
그것은 김태식의 9연속KO승을 어느정도 신빙해야하는가하는점이었다. 그런데다 「이바라」가 너무나 노련하고 「스피디」한 A급「챔피언」이라는 점에서 조기도전의 불안감을 주었던것이다.
원진체육관관장인 김규철 「매니저」(44)가 『태식이에게서는「미들」급선수의 「펀치」력을느낀다』 고말하고있을 정도로 파괴력의 「복서」여서 결국 이 파괴력이 적중한것이다.
김태식은 강원도묵호중2화년때 인장업에 종사하던 아버지 김수형씨(63)가 사업에 실패, 서울로 이사해온것이 「챔피언」으로탄생하는 계기가됐다.
현재 경기도 부천에 거주하는 태식은 71년 서울로 이사왔으나 서류미비로 전학이 안됐다. 14세의 어린 태식은 신문팔이등 고생을 하면서도 동네(영등포구 가리봉동)에서 「비닐」봉지를 손에 감고 혼자 권투흉내를 내면서 무수한 싸움을 하는등 부모속을많이 상하게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19세때인 지난76년3월 구로동에있는 필승체육관을 찾아 이영원사범에게 「스파링」을 자청, 상대를 1회 시작하자마자 「훅」 한방으로 KO시켜 이사범을 놀라게했다.
태식은 5개월 연습하다 다음해 김준호도장으로 옮겨 한달만에「데뷔」전은 치렀으나 「데뷔」전에서 고기봉에게 3회KO패, 지금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그러나 태식은 77년 신인왕전에서 최우수선수상을 수상, 「스타」탄생을 선언했고 이후 연속KO승을 장식하여 「팬」들을 매료시켜 왔다.
김규철「매니저」는 경기가 끝난뒤 『김태식은「이바라」의 「페레스」「매니저」와 두차례「옵션」에 묶여있다. 1차는 4만 「달러」, 2차는 5만「달러」에 걸려있는데 협상에 의해 두 「옵션」을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이민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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