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나 돈이 공부하고 재수 3수생 내야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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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에는 돈이 없으면 공부를 못한다는 그릇된 사조가 일선교사나 학부모·학생들 사이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게 되어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크나큰 문제로 돼있다.
입신출세만을 위해 일류대학의 간판을 따내야 한다는 집념이 과외공부와 재수라는 이질적인 교육풍토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교사나 학부모가 제자나 자식의 가장 기본적인 지능지수 (아이·큐)에 관계없이 돈만 있으면 과외교사를 초빙한다.
사설학원에 보낸다하여 극히 기계적인 주입식교육으로 일관해 대학입시에 합격시키는 목적만을 추구하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할 것인가.
결국은 자녀들 자신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공부를 하고, 나아가서는 돈이 공부를 하다 재수·삼수라는 기형적인 예비대학생만 양산해 인생을 망치는 교육풍토가 이 나라의 산업고도화와 함께 살찌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는 한마디로 교육의 역사가 빈약한 탓이다.
교육의 역사가 깊은 「유럽」여러나라에서는 우리나라와 기본적으로 사정이 달라, 소위 간판주의라는 것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다.
주입교육이 아닌 개발교육이 고도로 발달해 있어 우선 학부모들이 누구나가 자녀의 지능이나 적성에 따라 처음부터 교육과정을 조절하는 분수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영국의 경우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인 11세가 되면「일레븐·플러스」라는 국가고시제도가 있어 적성에 맞는 상급학교 진학의 기회를 선택하게 된다.
「아이·큐」가 높은 학생은 정규대학「코스」를 계속 밟게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아예 단기직업학교를 선택한다든가, 사회진출을 위한「코스」를 찾는 등 교사와 학부모·학생들이 서로 뜻을 모아 장래진로를 정하고있다.
따라서 이「일레븐·플러스」에 합격한사람만이 중등과정인「퍼블릭·스쿨」로 진학하고 이어「옥스퍼드」나「케임브리지」대학 등 이른바 명문대학에 진학할 기회를 찾게 된다.
영국은 이같이 진학의 과정이 다양하고 엄격히 규제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모든 사람이 모든 학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만큼 제도상으로나 문교부정책상 교육적 민주주의가 철저하게 보정되어있다.
우리나라의 교육엔 제도상 차별과 제한은 없으나 빈부의 격차가 학생의 지적자질이외에 진학의 질을 좌우하고 있으니 문제다.
오래전부터 천재나 둔재를 가리기 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류대학에 진학하여 입신양명을 하겠다는 그릇된 풍조가 만연되어 있다.
하지만 국가의 정책이나 제도가 이 같은 입신출세주의에 편승한 교육풍토를 규제할 길이 없으며 또한 규제할 수도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소위 일류대학을 나오면 사회계층이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에 돈을 들여서라도 과외공부나 사설강습소를 다녀야겠다는 학부모나 학생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대학은 간판 따는 곳이 아니라 학문하는 곳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겠다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대학은 학문을 생산하는 곳이요, 대학생은 학습 을 하는 곳이며 교수는 연구를 하는 곳이다.
모름지기 학문의 도장에 일류가 어디 있고 이류·삼류가 어디 있겠는가.
그동안 이나라에는 대학진학을 지원하는 사람이 늘어난 만큼「뉴·타이프」의 대학도 많이 생겨났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은 선진국 미국이나 일본·영국 등에 뒤따라 갈 만큼 인적· 물적 시설도 상당한 정도로 갖추어져 가고있다. 이는 사실상 국력신장에 비해 향학열이 앞서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재수·삼수생을 없애고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균등을 부여하기 위해 대학정원만 늘린다면 양적 생산은 이룰지언정 질적 생산은 퇴보하게 마련인 것이다.
대학정원은 어디까지나 수용태세를 갖출 국력에 비례해서 늘려야 하는데 우리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아야겠다.
미국의 경우 이제 대학정원이 문제가 아니라 한 차원을 더 높여「엘리트」를 양성하는 특수학교도 생겨나고 있다.
지능지수가 높은 학생들만 뽑아서 교육하는 특수학교로서의 고등학교도 여기저기에 세워져 있으며 거기를 나온 학생들이 명문대학에 대량으로 입학, 장차 국가의 중요한 역할을 맡기 위한 학습에 전념하고있다.
이러한 특수고등학교가 우리나라에 나타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이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교육풍토를 저지할 길이 없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는 오직 학부모가 현실을 직시하고 장래를 내다볼 수 있는 깨달음이 뒤따르지 않는 한 어떤 제도나 권력으로 저지할 수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바탕으로 초·중·고·대학까지 진학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선천적인 능력을 중요시해야 된다는 점이다.
소질이나 능력 그 자체가 기본이 되어「아이·큐」가 높은 사람이라야 장기교육에 성공할수가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자각해야겠다.
과외다, 사설학원이다 해서 돈만 많이 들인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깨달아야하지 앉겠는가.「아이·큐」가 1백3O이상이면 야단스럽게 과외수업이나 재수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우리 교직자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사랑하는 자녀의 「아이·큐」가 몇인지도 모르는 학부모들이 일류대학만 고집한다면 그 자녀가 장래 무엇이 되겠는가.
20세전후의 청년이야말로 인생에 있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가장 중요한 때다. 이 시기에 일류에의 꿈을 버리지 못한 채 2∼3년간 똑같은 과목을 두고 입시공부만 되풀이하면서 재수·삼수를 거치는 동안 극심한 「노이로제」 와 「콤플렉스」가 쌓여 그렇게 열망하던 대학진학도 포기 한채 인생낙오자가 되고 마는 일이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낙오생이 지금 수십만명이나 돼 당황하고 있다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두가 대학을 나오고 그것도 일류대학을 나와야 한다면 사회의 제한된「프러페션」에서 밀려난 고급두뇌들은 또 어떻게 소화시켜야 한단말인가.
만시지흠의 감이 없지 않으나 이제 학부모나 학생들이 간판이 아닌 학문을 생산하는 대학의 본질을 살려야할 때가 되었음을 깊이 자각해야겠다.
이선기(72 영남대총장 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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