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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 무임승차 줄이고 기초수급자 자녀 기준은 낮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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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복지제도 중에서 자식의 능력이나 상태에 따라 혜택 여부가 좌우되는 게 몇 가지 있다. 대표적인 게 건강보험 피부양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부양의무자이다. 건보는 너무 후해서 죄는 쪽으로, 기초수급자는 너무 인색해서 완화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건보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을 복지 대상에서 제외하려는 것이고, 기초수급자 완화는 저소득층 자녀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취지다. 자식이나 부모의 살림살이가 어느 정도 돼야 부양 의무를 면제받을 지가 논란의 핵심이다. 자식의 삶이 팍팍해지고 부양 의식이 엷어지는 세태를 반영하려는 취지도 있다.

 건보 피부양자 제도는 ‘무임승차’라고 부른다. 직장 가입자에 얹혀 건보료를 내지 않고 의료 혜택을 본다. 4월 현재 2047만9000명. 전체 건보 가입자의 40.9%이다. 자녀가 993만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부모(474만명)다. 고령화, 베이비부머(1955~63년생) 은퇴 등의 영향으로 매년 늘고 있는데, 2000년에 비해 540만명(36%)이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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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부양자가 되려면 금융소득(이자·배당), 연금, 근로·기타소득(강연료 등)이 각각 4000만원을 넘어서는 안 된다. 보건복지부와 건보공단은 건보료 부과체계를 뜯어 고치면서 이의 일환으로 피부양자 기준을 강화하려 한다. 지역가입자의 과도한 재산 건보료를 낮추는 게 부과체계 개선의 핵심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역가입자의 재산건보료를 낮출 경우 피부양자 금융소득 기준을 2000만원으로 낮춰 벌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가 올해부터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을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낮췄는데, 이를 따라가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약 4만여명이 피부양자에서 탈락하며 평균 월 18만~22만원의 건보료를 별도로 내야 한다.

 건보공단은 다른 대안으로 금융·연금·근로 등의 소득을 더해서 기준을 새로 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자격부과실 최덕근 부장은 “소득별로 따로 기준을 설정하다 보니 연금이 3000만원, 기타소득이 2000만원인 사람이 피부양자가 된다”고 지적한다. 이러 저런 소득이 각각 3000만~4000만원이 있는 경우가 6만8000건에 이른다.

  노인이 기초수급자가 되려면 자녀의 부양 능력을 따지는데 이 기준을 두고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이게 기초수급자 선정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부양 의무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대도시에 살면서 자기 생계를 꾸리고 부모도 부양하려면 한 달에 얼마를 벌어야 할까. 서울에서 노모(老母)를 모시는 회사원 김효자(45·4인가구)씨를 가정해보자. 현행 기초생활보장법은 212만원으로 규정한다. 이에 못 미치면 김씨는 부모 부양 의무가 없다. 그 정도 벌이는 아내와 아이들 먹여 살릴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판단한다. 국가가 나서 노모를 수급자로 지정해 생계비를 지원하고 의료를 제공한다. 213만원부터 김씨에게 부양 의무를 일부 부과해서 노모의 생계비를 깎는다. 290만원이 넘으면 국가는 손을 뗀다. 김씨가 전적으로 부양해야 한다.

  임호근 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장은 “아이 교육시키고 주거비 등을 충당하기에는 현행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면제 기준을 212만원에서 302만원으로, 정부가 손을 떼는 기준을 290만원에서 464만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반대에 부닥쳐 10월 시행이 물 건너 갔다. 새정련은 기준을 더 풀자고 맞선다. 안철수 대표가 3월 발의한 법률개정안(일명 세모녀법)은 부양 면제 기준을 404만원(정부안 302만원)으로 높이자고 제안한다. 이는 4인가구의 중위소득(일렬로 세울 때 정중앙)이다. 새정련 일각에서는 아예 기초생활보장제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없애자고 주장한다. 복지부 임 과장은 “부양의무 조항을 없애면 부양 기피 풍조가 번지고, 효 문화를 흔들기 때문에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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