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729)-영화60년(제67화)(29)최초의 영화제/38년에 신문사주최로 영화45편 올려/관중투표로『아리탕』등 베스트10뽑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총독부에 의해 우리 영화는 날이 갈수록 더욱 목이 죄어들었다. 그러나 영화인들은 이런탄압 속에서도 영화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고 영화제작에 혼신의 정열을 쏟았다.
화랑영화사가 제작한『청춘부대』로 홍개명이 감독으로「데뷔」했고, 우도영화사 제작의『한강』으로 방영준이, 극광영화사가 제작한『어화』로 독일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안철영이, 천일영화사가 제작한『국경』에서 최인규가 각각 감독으로「데뷔」했다.
또 극연회영화부가 김유영감독으로『애련송』이란 영화를 만들었다.『애련송』은 서항석이 동아일보 학예부장으로 있을 때 모집한「시나리오」현상공모에서 당선된 작품이었다. 이때 당선작가가 최금동이다.
38년11월26일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제가 부민관(지금의 세종문화회관별관)에서 열려 성황을 이루었다. 조선일보가 주최하고 전 영화인이 후원한 이영화제는 조선일보 강당에서 영화전시회를 열고 상영이 가능한 45편(무성·발성 포함)의 영화를 대상으로 일반 관중에게 투표에 의한「베스트」10을 선정케 했다. 그리하여 무성·발성영화 각「베스트」3까지를 개최기간 중에 상영하고 개최기간 최종일인 28일엔 영화·연극배우가 함께 출여,「시드니·킹즐리」원작의 연극『막다른 골목』을 공연하기도 했다.
이때에 뽐힌「베스트」5를 보면 다음과 같다.(괄호안은 득표수)▲무성영화①아리랑 (4,974)②임자없는 나룻배(3,783)③인생항로(3,075)④춘풍(2,921)⑤먼동이 틀때(2,810)▲발성영화ⓛ심청전(5,031)②오몽녀(4,596)③나그네(4,366)④어화(3,907)⑤도생록(3,597).
총독부의 탄압으로 우리나라 영화의 앞날은 암담했지만 나는 영화에 대한 정열을 더욱불태우기 위해 큰종이에 수필로『영화』란 글자를 써서 안방 벽에다 붙여 놓았다. 그리고는 드나들면서 그 글자를보고 영화에 대한 집념을 더욱 굳혀나갔다.
그때 나는「시나리오」1편을썼는데, 마땅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 고심하고 있었다. 며칠을 고심했는데도 좋은 제목이떠오르질 않았다. 하루는 밤에꿈을 꾸었는데 길에서 촬영기사 이창용을 만났다. 나는『이형, 전창근감독이 영화를 한다던데 제목이 뭐요?』하고 물었다. 그러니까 이창용이 하는 대답이『제목이「새로운 계극」이요』했다.
나는 이 소리를 듣는 순간퍼뜩 잠이 쨌다. 『옳지, 됐다. 내「시나리오」의 제목을「새출발」로 하자』고 결정, 마음에 드는 제목을 얻었다.
하루는 조선영화사사장 최남주로부터 연락이 왔다. 만났더니 영화를 제작해야겠는데 이갑독이 좋은「시나리오」를 갖고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최근 탈고한『새출발』이란「시나리오」가 있다고 대답했더니『그럼 제작을 서두르자』고 했다. 그런데, 이때 이 영화사의 지배인으로 있던 이재명이 동경으로 가 일활영화사에서 감독수업을 하고 있던 이병일을 만나 그의「시나리오」『풍년가』를 제작하기로 약속하고「시나리오」를 갖고 귀국했다. 이렇게 되니까 영학제작이 경치게 됐다.
결국 조선영화사의 부담이 너무 많아 나의『새출발』은 전무로 있던 오영석의 개인출자로 제작하게 됐다.
『새출발』은 한 시골 부호의 몰락과 아들과의 갈등, 그리고 그 아들의 참회를 그린 것인데, 영화중 중요한 사건의 무대가되는 큰 집이 한채 필요했다. 궁호의 집답게 고대광실이어야만 했는데 서울 근교엔 마땅한 집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촬영기사 양세웅, 조명기사 김성춘과 함께「로케」장소를 물색하러 나섰다.
서울을 떠나 의정부로 해서 동두천을 거쳐 경원선을 따라올라갔다. 물론 줄곧 걸어서였고 집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어 갔다. 10월이어서 걷기엔 쾌적한 날씨였지만 몹시 지루하고 따분한 여행길이었다.
경기도 연천을 지나 철원 가까이 갔는데도 도무지 마음에드는 마땅한 집이 없었다.
나는 성격이 여간 까다롭지않아, 특히 영화에 있어서는 소품 하나라도 내「이미지」에 맞지않으면 쓰지않는성미였다.
그러니까 작품에 적합한 고대광실이 쉽게 눈에 띌리 없었다.
철원부근 월정리란 곳엘 닿으니 찾는 집은 나타나지 않고 친야가 확 트인 넓은 들판이 나타났다. 그 넓은 들판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준수한 귀공자처럼 널찍한 가슴을 열고 우리 앞에 나타난것이었다.
무더기로 핀 갈대가 바람이 일때마다 우수수 소리내며 울어 더욱 감상적인 서타을 불러 일으켰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