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경의 제 식구 감싸기가 수사 망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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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시 강서구 3000억원대 재산가 송모(67)씨 피살사건이 송씨가 생전에 작성한 금전출납장부에 등장하는 공무원들 수사로 불똥이 튀었다. 경찰과 검찰은 장부의 존재를 확인하고도 장부에 나오는 검사와 경찰관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제 식구’ 보호를 위해 축소 수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우선 송씨 살인사건 수사 초기에 장부를 확보한 강서경찰서가 남부지검에 송치할 때 장부 전체를 넘기지 않은 점이 석연치 않다. 이 장부에는 A 부부장검사, 법원 관계자, 경찰관 5명, 전·현직 시·구의원 3명, 세무·소방 공무원의 이름과 금전 지출 내역이 적혀 있었다. 송씨가 관련 공무원에게 준 뇌물 리스트로 의심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강서서는 송씨 살해를 교사한 혐의로 구속된 김형식 서울시의원과 관련된 내용만 검찰에 넘기고 나머지는 복사해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 경찰 상부엔 복사본이 없다고 허위 보고를 했다. 장부에 경찰관도 5명이나 포함돼 있었지만 수사는커녕 자체 감찰에도 착수하지 않았다.

 살인사건과 별건이긴 하지만 뇌물사건의 중요한 단서인 장부를 검찰 송치 전에 유족에게 돌려준 것도 문제다. 경찰은 임의 제출받은 것이라 반환했다고 했지만 송씨 아들은 장부를 돌려받아 돈을 받은 사람의 이름 등 23곳을 수정액으로 지웠다. 결과적으로 경찰이 증거 훼손의 기회를 준 셈이다.

 장부에 A검사가 등장한다는 보도가 나온 뒤 남부지검의 대응도 이해할 수 없다. 남부지검은 처음엔 A검사가 한 차례 20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가 두 차례 300만원을 받았다고 고쳤다. 남부지검은 또 사건 송치 12일이 지난 15일 “A검사가 10여 차례 등장하며 금액은 1780만원”이라고 다시 정정했다. 남부지검은 장부 내용이 수정됐는지를 몰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장부는 수정액으로 눈에 띄게 지워져 있었다. 송씨 아들이나 경찰에 확인했더라면 A검사의 금품 액수 정도는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김진태 총장은 A검사에 대한 수사를 대검 감찰본부에 지시했다. 처음부터 제대로 했더라면 남부지검이 이렇게 망신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라도 검찰은 송씨 장부에 등장하는 공무원들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