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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 「중앙문예」문학평론 당선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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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3. 「힘」의 발생근원과 전이화
전통성에 기반을 둔 한국문학의 양상은, 서민적인 기질에서 시작된 소수의 남성주의적 문학작품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여성주의로 흐르고 있다.
이성부의 시가 가지는 세계는 지극히 남성적인 세계다. 이것을 시사해주는 것이 바로 그의 「힘」의 사상이다. 이것이 그가 서민적인 정신구조 속에서 그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는 충분한 증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남성성에서 오는 시의 견고한 언어라든가 구조의 강직성, 표현의 과감성, 사장의 완고한 체계를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의 「힘」은 그 자체로서 자생능력을 가지지는 못한다. 앞서 말 한대로 그 「힘」은 밑바탕을 「사랑」으로 하여 시작된다.
그녀가 어느 날 숨거두어
겨울 저녁 벌판에 내리는 눈발로 만났을 때,
한 사내의 이마 위를 차갑게 때리고 돌아서는 일은
살아 못다 한 사랑의 남은 힘이 아니냐,
하얀 얼굴은
허무로 다져진 슬픔의 검은 이름이 아니냐.
-『미인』 에서
차가운 벌판에서 잉태된 사랑은 그의 변신인 「힘」으로 나타나 「슬픔의 검은 이름」을 허무로 다지게 된다. 결국 사랑은 그와 밀접한 역동적 힘을 새로이 창출해 내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 힘이 사랑과는 달리 좀더 구체성을 띠게 된다는 사실이다. 좀더 실천적이고 실제적으로 다음에 올 부활의지의 직접적인 동인이 되는 것이다. 힘은 하나의 의지이며, 이 의지는 창조성을 지닌다.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로서 자연의 조화를 구가할 수 있었던 「니체」(F.W.Nietzsche)처럼, 이성부의 시 세계도, 조화와 부활이 결국 동일한 개념으로 수렴되는 한에서, 사상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때때로 이 힘의 생성은 자연을 객관적 상관 물로 삼아 이루어지기도 한다. 생명력은 삶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것이며 그의 시 세계의 핵심을 이루는 것인 만큼 생명력을 포괄하는 자연은 그에게 큰 영감으로 부각되었다.
한줌의 흙을 쥔 채
-『이농』에서
노인은 끝끝내 영산강을 퍼 올린다.
가슴에다 불을 짊어지고
-『전라도·7』에서
이 목마른 대지의 입술 하나
이 찬물 한 모금
-『백제행』에서
견고한 대지와 생명의 응결력을 지닌 「물」을 가지고 「바다를 버리고 솟는/해가 그의 의지로 우리들 앞에 나타날 때」 힘은 내부구조를 정립하고 능동성을 발휘할 준비를 한다. 결국 자연의 요소는 사랑을 가지고 있으며 그 사랑은 우수의 구성요소를 통해 힘을 방출해 내는 것이다. 대지에서 충분한 물을 받으며 자라난 생명력은 「쇠보다도 단단한 가슴」이 되고 「큰 외침」이어 「불」로 변신한다.
불은 가벼운 상승력으로 공기 속에 확산되어 그 생명력을 무한하게 퍼뜨린 다음 그 생명력을 일반질서로, 다시 말해 삶의 질서로 개념화하게 되는 것이다. 힘의 개념은 대지에서 하늘까지의 수직적 상상력의 폭에 넓게 자리하여, 그 사이를 회전하는 삶에 「에너지」를 제공하며 삶에 긴장감을 넣어주는데 공헌한다. 즉 힘은 삶의 순환의 원동력이며, 따라서 고난과 부활의 변경에서의 촉매 적인 역할을 한다.
안으로 안으로 노여움만 삭히던
마음들이
함께 밀려서 다른 산을 이룬다
산에 밀린 자리에 솟는 입김,
토막이 되고서도 꿈틀거리는 힘.
-『불도저』에서
강인한 생명력으로 「토막이 되고서도 꿈틀거리는 힘」은 모두의 「마음들」들이며 공동체 전반적인 「모토」인 것이다. 사실 공동체는 「만날 때마다/서로를 외로움만 쥐어뜯는」 곳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의한 치유와 힘의 능동성이 요구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에서 나온 힘은 사랑의 생성이 그렇듯, 역시 고난을 함께 하고 있다. 그만큼 현실을 무시할 수 없고 고난을 떨쳐낼 수 없는 환경에 처하여 있다.
「하루 두끼 라면을 먹고도/형들에게는 더욱 큰 힘만 싸여 가오」라는 구절이나 「돌아보면 힘없이 내미는 말/고요하디 고요한 마음」같은 표현에서 이점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다. 힘은 그러기에 다면성을 가지고 각 양상마다에 그 나름의 개별적 응전력을 덧붙이게 되는데, 그러한 다양한 응전의 양상은 결국 현실초극의지와 연결된다.
바다를 버리고 솟는 불덩이여
해가 그의 의지로 우리들 앞에 나타날 때
나의 삶은 더 많은 나의 삶을 끝끝내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인가, 우리들의 행동은
싸움은 불덩이는 앞장서 갈 수 있을 것인가.
-『더 많은 사람들』에서 미래에 대한 의지로 어느새 「힘」은 전이 화되고 있어 삶을 「이끌어 갈」 수 있고 「앞장서 갈 수」있는 모습으로 바뀌어 새로 태어난다. 즉 힘은 변형되고 의지로 재정리되는 것이다.
사랑을 기반으로 하여 구체성을 띠는 힘의 개념은 사랑과 부활의 중간에 서서 촉매적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힘은 하나의 의지이며 의지는 우주의 통합을 지향하고 있기에 그의 시 세계에는 바다와 대지와 불의 개념이 힘을 이루는 요소로 사용되고 있다.
결국 힘은 부활을 위한 하나의 과도기적인 위치에서 능동성을 발휘하는데 지나지 않으며, 우리가 더욱 중요시하여 관찰할 것은 「부활」의 상징성과 고난극복의 일반적 특성이 그의 시에 어떻게 발현되어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계속>

<차례>
1. 서론
2. 사람의 역동성
3. 「힘」의 발생근원과 전이화
4. 고난과 부활의 원형적 의지
5.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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