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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금리인상은 「다 아는 비밀」이었다|발표보다 한발 앞섰던 「외환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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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긴박했던 며칠이었다. 환솔·금리인상을 앞두고 팽팽한 긴장속에 돌아갔던 정부·은행·금융계의 동정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장장 5시간반 회의
청와대
새해 경제운용계획과 당면 경제시책을 협의한 11일 청와대 회의는 상오 10시30분부터 하오 3시30분까지 계속됐다.
최규하 대통령은 경제부처가 마련한 여러안을 하나하나 검토하며 장단점을 비교하고 장관들간에 충분한 토론을 거치게 한 후 단안을 내리는 방식으로 회의를 주재.
특히 기획된 재무부가 마련한 수출지원금리가 연9%에서 기타 정책자금 금리와 같은 20%로 올리게 되어있어 정재석 상공장관으로부터 끈질긴 이의가 재기되자 최 대통령은『연15%로 조정하되 6월말까지는 그보다 낮은 금리를 잠정적으로 적용토록 하라』고 결정을 내렸다.
회의에서 환율 인상율과 금리인상폭을 놓고 참석자들간에 이견이 많아 진통을 겪었다는 후문.
물가파급싸고 논란
기획원
올해 경제정책의 대강을 잡아야 할 경제기획원은 환율조정의 득실을 명확히 가늠하지 못한 채 석유를 비롯한 정책여건이 명료해질 때까지 환율조정을 연기하자는 주장이 지배적이었고 12월28일 이한빈 부총리도 회견에서 이런 입장을 설명, 환율조정점의 무기연기를 발표했었다.
그러나 KDI·경제과학심의회의쪽에서 고용·국제수지측면을 중시, 계속 환율조정을 주장함으로썩 지난9일 다시 재론되었다. 9일 하오 중앙청에서 열린 신현확 총리주재의 경제각료 간담회에서 수출산업의 고용효과와 국제수지개선을 내세워 환율조기인상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10일부터 기획국실무작업반이 환율인상을 전제로 올해 경제운용계획의 작성에 돌입. 그러나 11일 아침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각료회의는 환율의 대폭인상이 미칠 물가파급에 대해 논란이 많아 하오 3시4O분까지 무려 5시간이나 「마라톤」회의를 강행. 이 회의에서 물가파급을 되도록 줄이는 방향으로 의견이 조정, 실무작업이 다시 시작되었고 발표는 12일 아침으로 미뤄진 것이다.
12월24일부터 작업
재무부
김원기 재무부장관은 장시간의 청와대 대책회의와 국무회의를 마치고 하오 4시20분 집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외환담당인 정인룡 국제금융차관보를 불러 1시간이상 단독으로 숙의.
그 사이에 박필수 상공부상역차관보가 「노트」자료를 들고 재무장관실에 왔으나 얘기는 못 나눈채 돌아갔다.
이재 및 외환국 직원들은 지난 12월24일, 25일 이틀에 걸쳐 대개 작업을 끝내놓은 터이라 당황하지는 않았으나 이날 다시 밤샘작업을 했다.
환율인상설로 외환시장이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재무부는 외환시장 동향을 일일이 「체크」했다.
그러면서 관리들은 이구동성으로 환율인상 같은 정책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법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처음 공식발설해서 경제질서에 혼란을 일으킨 사람을 경제사범으로 책임 추궁해야 할 것이라고 흥분했다.
장관참석으로 소문
상공부
정재석 상공장관은 11일 하루종일 장관실을 비우면서 바쁘게 돌아갔다.
정 장관은 출근 후 10시50분쯤 비서실에 『기획원에 간다』는 말을 남기고 외출을 했으나 후에 행방을 추적한 결과 청와대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청와대회의를 마치고는 하오 4시부터 개최된 정례 국무회의에 참석했고 그 후에는 장관실에 돌아오지 않고 모처로 잠적한 채 수행비서관을 보내 상역차관보를 외부로 불러냈다. 하오 6시엔 관동「클럽」 초청 간담회에 들러 양해를 구한 후 청와대로 직행, 만찬에 참석했다. 이에 앞서 10일 상오에는 경제기획원·재무부를 다녀왔고 하루전인 9일에는 총리와 요담, 원자력7,8호기의 수주문제 등을 협의했다.
반대론 묵살돼 침울
한국은행
애당초 환율 및 금리인상에 반대입장을 취해오던 한국은행은 최근 일련의 정책조정작업에서 다소 소외된 느낌.
내부적으로는 인상반대릍 위한 보고서를 만들어 놓고서도 대세에 밀린 채 소극적인 신중론만을 펴오던 한은측은 막상 대폭적인 인상설이 나돌자 만나는 사람들마다 개인적인 포문을 열어 인상반대론을 폈다.
특히 이번 인상움직임을 주도했던 KDI의 정책건의안을 놓고 조목조목 따져가며 비판을 했으면서도 정작 적극적인 대안을 게시하지 못했다는 게 한 망국자의 고백.
더구나 이번의 대폭적인 인상이 「금융기능의자율화」라는 명분론에서 볼 때는 정작 앞장을 서야했던 한은이 뒷전에 밀러 귀동냥을 하느라 전전긍긍하는 모습들이었다.
신병현 한은총재는 「인도네시아」ADB관계회의에 참석하고 12일 귀국했다.
달러화 거래를 중단
은행창구
환율인상이 확실하다는 소문이 나돌자 11일 하오부터 각 은행 창구에는 「달러」를 바꾸러 몰려든 인파로 일대혼잡을 빚었다.
외환은행의 외환부 객장은 해외여행 경비를 바꾸러 왔거나 해외송금을 서두르기 위한 기업들로 3백여명이 붐벼 한때 외국환 업무가 중지되기도 했다.
조흥은행의 국외부에는 영업마감시간이 5시 이전에 접수된 서류에 대해서도 「달러」가 없다는 이유로 결제를 해주지 않아 밤늦게까지 2O여명이 창구에서 항의소동을 벌였다.
한편 은행측은 10일 저녁 재무부가 「호스트」가 되어 각 은행 여신담당상무들이 모이기로 했던 자리에 재무부 사람들이 한사람도 참석치 않자 무슨 중대조처가 있다고 짐작하고 은행간「달러」 거래를 일체 중단해 11일의 한은외환교환실은 개점휴업상태.
사채금리 올라 고민
기업
지난 연말부터 설왕설래속에 비상을 걸어온 업계는 10일부터 일체의「네고」를 중단했고 이 바람에 부족한 자금을 메우느라 사채금리는 급등세를 보였다.
특히 외화대부를 얻어 수입을 했던 기업들은 조기 상환하겠다고 거래은행에 몰려들었지만 한은측의 강력한 조기상환 금지 지시에 따라 모두들 헛걸음.
그러나 갚을 수 있는 외채는 빛을 내서라도 대부분 앞당겨 갚았다.
한편 대기업들은 그동안 하청업체와의 내국신용장 개설시에 환차익을 일정율로 배분할 것을 계약조항에 삽입해 왔다는 것.
기업마다 비상 작업반을 편성, 정보탐색과 대책마련에 11일 밤을 거의 세우다시피 했다.
무역주 등 이미 급등
11일 증권시장은 전일에 이어 환율인상설이 난무한 가운데 강한 매기로 시작됐다. ·
외환수입과 관련이 있는 무역건설주를 중심으로 활기를 보였으나 전장이 끝날 무렵부터 환율·금리인상에 따론 원가상승으로 기업전망이 불투명하다는 견해가 터지면서 장세가 진정되어 종합주가지수는 0·7「포인트」상승에 그쳤다.
이러한 투자자들의 전망세가 후장들어 장내에 팽배해 하락을 가속시켜 종합주가지수는 1·8「포인트」가 오히려 빠졌다.
이날 증시는 거래가 있은 2백84개 종목 중 83개 종목이 올랐고 1백42개 종목이 내렸으며 전일 급등세릍 보였던 무역·건설 중 무역은 1·9「포인트」가 올랐으나 건설업은 2·5「포인트」가 떨어졌다.
12일 증시는 환율금리인상에 따른 부정적인 견해가 장세를 지배해 모든 종목이 폭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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