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 평화적 해결 실마리 찾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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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 핵 문제가 새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그동안 북.미 양자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고수해온 북한이 다자 대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이런 반응은 한.중 양국이 다자 대화 해결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와중에 나왔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미국도 이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 다자 대화의 물꼬가 트일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해 10월 새 핵 개발 계획이 불거진 이래 상황이 악화돼온 북핵 문제는 일단 관련국들이 해결의 형식에서 접점을 찾으면서 중대 전환점을 맞는 분위기다.

중국의 물밑 역할 드러나=북한이 다자 대화에 유연한 입장을 보인 데는 중국의 건설적 역할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대북 영향력이 큰 중국은 북한에 대해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해 왔다.

올 들어 3일 동안 파이프 공사를 이유로 대북 석유 공급을 중단하고, 지난 2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핵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기로 결의했을 때 찬성표를 던진 것은 대북 압박의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중국은 후진타오(胡錦濤)체제의 출범과 이라크전 개전을 계기로 적극적인 설득 외교로 돌아섰고, 이것이 북한이 다자 대화를 수용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이라크전 개전 이후 중국 고위층이 삼지연의 안가에 머물고 있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났다는 얘기나 중국 공산당 부국장급이 평양을 방문한 것은 이와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한.중 외무장관 회담이 끝난 직후 다자 대화에 유연한 입장을 나타낸 것은 중국에 대한 배려의 색채가 짙다는 풀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조만간 중국을 방문하게 되면 신의주 행정특구 장관 문제로 삐걱이던 북.중 관계가 다시 정상화하고 북핵 다자 해결 구도도 확고해질 전망이다.

북한 속사정과 정부 외교 노력도 한몫=북한이 다자 대화에 유연하게 나온 데는 "이라크 다음은 북한"이라는 국제사회의 인식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으로선 어떤 식으로든 예봉을 피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전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 또한 북한의 결단을 촉구하는 요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우리 정부의 적극적 외교 노력도 빼놓기 어렵다. 북.미 양자 대화 우선 원칙에서 다자 대화로 돌아선 것은 관련국이 다자 대화의 접점을 찾는 계기가 됐고, 북핵 문제의 단계적 해법안(로드맵)은 관련국을 끌어내는 절충안으로 작용했다.

실질적 대화까지는 시간 걸릴 듯=미국은 자신들이 내놓은 다자 대화를 수용할 수도 있다는 북한의 의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큰 만큼 대화의 분위기는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다자 대화 구도는 남북+미.일.중.러의 '2+4'가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검토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P5)이 포함된 다자 대화에 대해 북한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핵심 당사국인 북.미 양측이 대화 원칙이나 의제에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전환을, 미국은 북한의 핵포기 의사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삼겠다는 입장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화가 성사되기까지는 상당한 조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1996년 한.미 양국의 남북.미.중 간 4자회담 제의 때 먼저 설명회와 예비회담이 이뤄지고 난 다음 본회의가 1년여 만에 성사된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통일외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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