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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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현대시의 특색가운데 하나는 모든 사물을 가능한한 인간현실의 문맥속에서 보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시인들은 그들의 가치관념이 바뀜에 따라, 표면적으로는 아름답지만, 이 배면에 죽음의 씨가 숨어 있다는것을 알고, 자연현상에다 오히려 그들 자신의 인간가치를 주장하려 했고, 불행한 인간현실을 개선해 나가는데 그들의 시선을 주었다.
그래서 현대시의 공간은 대부분 황량하고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만, 약한자들의 감상주의보다는, 주어진 비극적 인간상황에 대한 반항과 분노의 외침이 있고, 자연가운데서 인간의 영역을 어떻게 확장해 갈것인가하는 심각한 물음이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보면 김상옥의 『백매』(현대문학)는 이달에 다른 몇몇 작품들과 더불어 우리들의 주목을 요구한다. 김상옥은 그의 시에서 봄날에 피는 깨끗하고 향기 그윽한 벚꽃과도 같은<백매>를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자연에서 일어난 단순한 풍경으로 보지않고, 불교에서 말하는 이른바 연기관이라는 상징체계를 통해서 인간 이차돈의 위대한 죽음과 그의 가치주장을 의미깊게 연결지어 설명하고 있다.
달관의 세계로 향한 삶의 변증법적 순화과정을 백자에서 린 동양문화의 문맥속에서 변용시킨듯한 여운마저 주는 이 시는 <그윽한 피>의 꽃향기를 담은<백매>의「이미지」를 통해 황무지에서 상실되어가는 인간가치를 미학적으로 구하는데 성공하고있다.
그러나 젊은 세대에 속하는 김옥영의 인간현실에 대한 감각은 한결 더 날카롭고 처절하며 수직적인 깊이를 더하고 있다. 시인은 수작 『죽은 날벌레들을 위해서』(문학과 지성)에서 <어둠에 갇힌 불빛>을 찾다 뜨겁게 타죽은 날벌레들과 <어둠이 허허 벌판>인 밤하늘에 빛나는 차가운 별들의 「이미지」를 통해 「카오스」상태에 있는 이 시대의 참된 인간가치를 의릅게 구현하려다 사라져간 젊은 시인들의 죽음을 사회적이고 존재론적인 변천과정의 문맥속에서「다이내믹」하게 감동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 시에서 김옥영의 시적감각과 언어가 뛰어나고, 또 시의 밀도와 구성이 너무나 완전하기 때문에 빛을 찾아간 <젊은 그들>의 힘찬 움직임은 우리들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는것 같다.
그리고 민영은 『재되기 위해』 (문예중앙)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황량한 현실적인 삶의 쓸쓸함과 무의미함을 서민생활풍경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비록 그의 시의 내용은 이렇게 살벌하고 허무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그의 거칠고 단단한 언어속에 숨어 있는 가혹한 현실에 대한 인간적인 분노와 반항은 우리들의 마음을 강렬하게 끌고있다. <문학평론가·서강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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