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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신사적 의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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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노명식=70년대의 지적 풍토는 한마디로 「상황에 눌린 지성」이라고 표현할수 있겠읍니다. 정치가 경화됨에 따라 정치문제가 모든 것을 좌우하고 지배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지식인들이 정신문화를 침착하게 모색·정리할 상황적 조건이 못되지 않았는가 생각되는데요. 어떻습니까.
이규호=우선 세계적인 지식사회의 관심사, 사고의 흐름이 70년대에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정리한 다음 우리의 문제를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70년대 세계사상계 동향의 특징은 대체로 4가지로 꼽아볼 수 있겠읍니다.
첫째는 60년대 중반부터 나타난 진보적·비판적 사회사상이 다른 학문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두드러지게 사상적·문화적「이슈」가 된 것이 사회과학방법론 논쟁, 그리고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심한 반발과 비판에 다른「삶의 질」의 탐구가 역사·전통에 대한 관심까지도 불러일으켰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70년대 후반들어 심각하게 느껴진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의 대립, 곧 남북문제의 제기를 들 수 있겠읍니다.
최재석=우리 지식사회의 특징을 평가하기 위해 우선 이에 대한 규정이 필요하겠읍니다. 지식사회란 학자·예술가·언론인등 문화적·지적생산에 종사하는 사회계층을 말하며 이들의 특징은 「비이윤의 추구」에 있읍니다.
60년대가 「반대해야 지식인」이라는 식의 집권자에 대한 공격일변도의 5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띠었다면 70년대는 긴급조치의 발동등 정치체제의 문제가 있었읍니다. 이같은 특징은 지식사회가 본래 갖기 마련인 비판전·사회적 역할이 상실되면서 나타났읍니다.
노=이선생님께서 세계적 지성의 흐름을 얘기해주셨는데 이러한 추세가 우리나라에는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정치·사상적 현실조건을 고려하면서 말쏨해주시지요.

<특수성의 논쟁>
이=세계적인 사회철학에 대한 70년대의 주도적 흐름은 우리 종교계를 비롯, 문학작품, 그리고 교수·학생들속에서도 많은 주목을 끌었읍니다.
종교계는 「사회구원」 「사회정의」 또는「인간소외에 대한 저항」등 현대산업사회가 안고있는 문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였고 문학은 문학대로 「참여」를 통해 같은 문제의식을 표현 했읍니다.
그런데 주목해야할 것은 최근에 와서 서구에서도 비판적 사회철학에 제동이 걸렸다는 점입니다.
「칼·포퍼」나「한스·앨버트」같은 철학자들이 비판적합리주의 또는 보수주의적 사조를 주도하고 있지요. 이를 우리나라 정치문제와 연결시켜 볼때 우리학자들이 이같은 흐름을 제대로 소화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희망의 신학」 또는 「혁명의 신학」을 대표하는 「몰트먼」같은 신학자의 『한국의 신학자들은 자신보다 과격하다』 또는 『인권도 상황이 다르면 다르게 이해되어야한다』는 말 에 귀기울여 볼 필요가 있읍니다.
「몰트먼」의 인권관은 이래요.
서구사회에서는 모든 개인이 정치활동을 자유롭게 할수 없을 때 「인권의 침해」라고 말하지만 동구에서는 노동·자본등의 생산수단이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을때 곧 불평등하면「인권」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교인이 우리상황에 맞게 사회철학을 받아들이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노=「몰트먼」의 이해를 문자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그는 역시 한국사람이 아니지 않겠읍니까. 한국의 문제는 한국사람만이 피부로 뼈저리게 느낄수 있다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사회과학방법론 논쟁만해도 70년대초 철학계로부터 시작, 사회과학계는 특수성과 보편성논쟁, 교육학계는 행동과학에 대한 비판, 철학계는 분석철학이나 실증주의적 경향에 대한 해석학, 또는 현상학쪽의 반격등 각계에서 치열했읍니다. 그러나 최근 서구에서는 상호보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바뀌고 있읍니다.
어떤 사회과학이나 창의성에 밑받침을 두어야 하고 창의성은 곧 특수성으로 연결되나 그것도 세계적·학문적인 이해를 위해 보편성을 가져야한다는 합의에 이르른 것입니다.
노=특수성과 보편성 논쟁이 서구에서는 해소된 문제라고 하지만 우리와 다른 역사적 상황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되겠지요.
그들이 안고있는 문제와 우리들의 문제는 그 구체적 상황이 다르니까요. 저는 앞으로도 80년대에 우리의 노력이 경주돼야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최=이같은 상황아래 70년대의 지식인유형을 제나름대로 몇가지로 나눠볼까 합니다. 제1유형은 권력과 밀착된 지식인이고 제2유형은 권력에 저항하는 지식인, 그리고 세번째 유형은 권력에 대한 일체의 관심을 결여한채 자신의 일에만 몰두한 지식인입니다.
이 제3유형은 다시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에 등을 돌린 대신 개인의 출세·치부에만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소수이나 「아카데미즘」에만 몰두한 교수들로 나뉩니다. 조금 도식적인 해석입니다만 이중 제3유형이 대부분의 70년대 지식인의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빈곤극복이 과제>
노=최선생께서 말씀하신 지식인의 유형은 70년대뿐 아니라 해방이후 한세대동안 지식사회가 늘 안고있는 문제를 지적한것 같습니다. 저자신을 포함해서 제3유형의 지식인 문제는 두고두고 우리 한국사회에 어떤 모양으로든지 자극을 남긴다는 점에서 깊은 반성이 있어야겠읍니다.
이=저는 노선생님과 약간 생각을 달리하는데요. 지성인의 사회적역할은 좀더 깊이 따지고 생각해야할 문제라고 봅니다.
시세에 따라 사회통념대로 피부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제2차대전후에 독립한 신생국이나 발전도상국, 곧 제3세계에 속한나라의 지식인은 특수한 상황에 있읍니다. 첫째로 정치적 목표가 다양하지 않고 「절대적 빈곤의 극복」이라는 지상과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문제가 해결돼야만 정치적 안정도, 문화적 불모성도 해결될수 있다고 봐요.
이같은 제3세계의 「국가건설」이라는 1차적 과제를 염두에 두지않는 「이중국적」의 지식인이 조국에 이바지하기 보다는 이를 방해하고 새로운 식민주의의 앞잡이 노릇을 하게 되는 사례가 세계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한 현상으로 지적됩니다. 그렇다고해서 민주화에 등한히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적 자유는 민족주의적 자유를 위해 그 자리를 양보할 때도 있는 것 입니다.
최=냉혹한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살아남기위해 「강한통제」가 필요하다는 이선생님의 말씀에는 어느 정도의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사회 인정을>
그러나 강한 통제가 어느 정도냐는 지식인 각자가 연구·검토해야할 문제라고 봅니다. 해방이후 우리지식인은 갖가지 경험을 해왔읍니다. 일제하의 양극적반항의 자세도 바람직하지않다는 점에서 앞으로는 권력지향적이면서도 민중과 연결되는, 다시말해 「지식사회의 존재와 역할을 인정하는 권력체게」가 가징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식인이나 권력층이나 피눈물 나는 공헌과 반성이 필요하겠지요.
이=「강한통제」라는 말에 오해가 없어야겠어요. 제가 말하는 것은 사회적·국가적통합이 필요한때 물리적통제보다는 설득과 이해, 그리고 교육이 유효하다는 생각입니다. 끝까지 설득과 이해를 안하려는 고집과 태도는 이제 바뀌어야 되지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여=70년대의 경우 어느 쪽이 더 고집이 세었느냐는 것을 생각해야 될겁니다. 오해받을 수있는 표현방식이 너무나 많았다는 점에서 앞으로는「언론의 자유」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서로 자유릅게 의사를 발표할 수 있을때 우리 민중은 결코 「선택의 오류」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민족이 갖는 역사적 과업은 세대적 또는 세기적목표가 돼야하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지도력」이 지속성을 갖지않을 때에는 오히려 위험하지요.
따라서 80년대의 지성은 켸켸묵은 말이지만 「변증법적 지양」이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극단적 사고가 아닌 「열린태도」로 변증법적 지양을 해야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오랜시간 감사합니다.

<정리=방인철기자>(주=이 좌담은 이규호통일원장관의 취임전에 마련된것임.)<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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