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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가와 대기자는 상통한다"|「사르트르」, 언론관을 피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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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존재와 무』 의 철학자이며 『구토』 등 수많은 실존주의 작품을 남긴「사르트르」가 최근 문예지 『누벨 · 리테레트』 를 통해 신문관을 밝혔다. 「노벨」 문학상을 거부, 화제를 모은바있는 그의 언론관은 윌간 『현대』 (45년) 와 일간 『해방』 (70년) 을 창간, 사장을 역임하여 많은 기사를 발표했던 경험을 토대로 했기 때문에 언론인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기자들은 변모할 것이다. 21세기의 신문들은 오늘과 같을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신문기자는「르·몽드」지처럼 완전무결한 기자를 상상해서는 안된다』 고 그는 말했다.
『해방』지는 읽지만 「르·몽드」를 거의 읽지 않는다고 밝힌 그는『「해방」지에는 「르· 몽드」 보다 더많은 내용이 담겨져 있다. 「르· 몽드」 는 너무 소심하며 합리주의적이다. 이신문은 시대이며 그 이상이 아니다』 고 「프랑스」등 서구와 동구·「아프리카」 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파리」의 최유력지를 비판했다. 하지만 『신문기자는 쉬운 직업이 아니었다』고 70년부터 3년간 『해방』 지 기자(사장)시절을 회상했다. 『나를 들끓는 물 (신문편집국) 속에 집어넣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는 끓는 물같은 기사를 써야했다. 내가 산문에 대해서 좋은 기사를 써야했을 때 신문의 들끓음과 내자신의 기사간에 모순이 있었다. 즉 편집국속에서 생활비를 벌어야하는 사람들은 기사를 무시해야할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나는 일반적으로 단순한 사건자체보다 광범위한 문제들을 기사화했다. 그리고 대화를 추구했다』고 기자시절을 회고한「사르트르」는 신문기자는 쓰는 기사에 따라 지식인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피력. 그에 따르면「지스카르」 행정부에 무조건 박수치는 「프랑스·스와르」같은 신문은『지성이란 조금도 없다』 고 매도했다.
그가 접촉했던 해방지기자들도 새시대의 지성인이라는 인상을 받지못했다고 지적한 그는 『지식인은 기자처럼 사회에서 명확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대부분이 대학교수와 석학들이다』고 말하고 지식인이 파악한 진실과 기자가 파헤치는 사회현상간에 하나의 모순이 있다고 했다.
「사르트르」옹에게 신문기자와 자식인이 일치했던 시기는「드레퓌스」사건때였다. 『지식인들은 「드레퓌스」 주의자다. 「드레퓌스」가 죄인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다수였고 진실을 아는 사람은 소수였다. 당시 기자의 지성적 작업은 「드레퓌스」대위가 무죄라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노력하는데 있었다. 바로 이점에서 지성의 「타이틀」을 기자들에게 줄 수있다』 고 말한다.
과학과 교육이 고취한 이념과 이것을 순간적이나마 받아들일 수 없는 군중들간에 모순이 존재하며 이 모순을 고발하는 기자나 글이야말로 지성적 작업이라 규정하고 타인이 생각하지 않는 특정분야의 전문지식만으로는 지식인 자격이 없다고 소리쳤다.
『19세기같은 특수시대에 지성인은 바로 신문기자였다』 고 말한 그는 뛰어난 역사적대기자로「빅토르·위고」를 꼽았다. 그에 따르면『레미제라블』같은 「위고」의 대작들에서 뛰어난「저널리즘」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사르트르」 는 신문기자가 인간을 창조하기 힘드는 것이나 작가는 이점에서 완전한 기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신문기자의「르포르타지」가 한국가·사회의 현실을 극명하게 묘사하는 점에서 문학성을 인정했으뗘 그 자신이 『해방』 에 쓴 기사나 논설이 감동을 불러일으켰다고 설명했다. 「사르트르」의 언론관은 인간창조란 작가적입장에 기초함으로써 제한된 지면과 보도기능을 고려하지않는 편견이라는 비난을 받을만하나 기자와 지성에 관한 견해등은 경청할만하다는 평가다.
【파리=주섭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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