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말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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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황인숙 (1958~) '말의 힘' 전문

기분 좋은 말을 생각해보자.
파랗다.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
신선하다. 짜릿하다. 후련하다.
기분 좋은 말을 소리내보자.
시원하다. 달콤하다. 아늑하다. 아이스크림.
얼음. 바람. 아아아. 사랑하는. 소중한. 달린다.
비!
머릿속에 가득 기분 좋은
느낌표를 밟아보자.
느낌표들을 밟아보자. 만져보자. 핥아보자.
깨물어보자. 맞아보자. 터뜨려보자!

남산 기슭에서 참새들 먹이나 걱정하며 사는 시인은 무료하다. 단어 하나, 마침표 하나에 자신이 살아온 생을 세워두고 건조시킨다. 시각동사들을 몸 안으로 다시 촉각동사들을 몸밖으로 운기하듯 굴리면서… 천년의 세월은 순간이다. 그럴 때 무시무시했던 고독이 마른나무의 '껍닥'을 열어 잎들을 쫌쫌 쏟아낸다. 그래서 남산.장독대.울타리에 봄꽃들로 환한 것이다.

강형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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