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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한 터치패널, 칠판 대신 쓰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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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가 서울 천호동 사옥에 마련된 ‘스마트 스쿨’ 체험장에서 멀티 터치테이블 위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있다. 화면이 손가락의 정전기를 감지해 실시간으로 반응한다. 사진=김형수 기자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는 갔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김성진(30) 아이카이스트 대표는 “제가 산증인이라고 해도 될까요”라며 웃는다.

 “시골동네에서 나고 자라서 200억 자산도 모아보고, 창업도 해보고,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도 됐으니까요.”

 아이카이스트(i-KAIST)는 정전용량(손가락 정전기를 감지하는 방식) 대형 터치패널을 만드는 벤처기업이다. 올 초엔 세계 최초로 유리 대신에 플라스틱을 이용해서 휘는(플렉시블) 터치패널도 개발해냈다. 국내외 특허만 50여 개가 넘는다. 터치패널을 만드는 곳은 많지만 20~100인치의 대형 터치패널을 월 10만대 이상 대량생산하는 건 아이카이스트가 세계에서 유일하다. 회사는 이 터치패널을 ‘스마트 스쿨’이라는 교육분야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아이들은 터치패널이 깔린 커다란 책상에 둘러앉아 손가락으로 자유롭게 책상을 만지고 건드리면서 공부한다. 여러 명이 동시에 진행할 수 있어서 ‘멀티터치 테이블’이다. 선생님은 터치패널이 깔린 칠판에 교재를 띄우고 판서를 한다. 모든 내용은 아이들의 화면에 실시간으로 보여진다.

 이런 스마트 스쿨이 현재 세종시를 비롯해 전국 초·중·고 320개 학교에서 운영되고 있다. 중국·일본·몽골 등 10여개국에도 진출했다. 지난해 12월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올해 현오석 경제부총리, 정홍원 국무총리 등 잇단 ‘VIP방문’으로 화제가 됐다.

 당시 박 대통령은 시설을 체험하고 나서 “이렇게 창조교육을 하면 아이들이 졸지도 않고 재미있게 공부를 하겠네요”라며 스마트 스쿨을 창조교육이라고 불렀다. 정 총리 역시 “굉장한 작품이 드디어 한국에서 나왔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제 막 서른이 된 젊은 CEO, 카이스트 1호 연구기업, 2011년 설립 3년 만에 수출 규모만 1억 달러(약 1000억 원)에 달하는 이곳에 어떤 특별한 점이 있는 걸까.

 지난 11일 서울 천호동 서울사옥에서 만난 김 대표는 “우리는 IT회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럼 어떤 회사냐고 물으니 “저뿐만 아니라 80명 모든 임직원들이 미래를 창조하는 회사라는 각오로 일한다”고 했다. 실제 건물 1층에 들어서자, 아이카이스트라는 회사명 옆에 ‘미래창조 기업’이란 말이 함께 새겨져 있다. 그는 “IT분야를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로 나누는 것 자체가 과거지향적”이라고 말했다. 또 “직접 쓰는 사용자가 만족을 느낄 수 있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렇게 하는 거다. 미래는 예측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실제 만들면 그 중에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가 창조경제의 물길을 트는 ‘퍼스트 펭귄’이라 불린다면, 그건 남들과 다른 사고와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용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가정형편은 어려웠다. 1994년 충북 음성 삼성초등학교를 다니던 10살의 김성진은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삼성 데스크톱 컴퓨터를 보고 맘을 뺐겨 매일 부모님을 졸랐다. 컴퓨터만 사주면 공부도 열심히 하고 나중에 성공하겠다고 ‘계획서’까지 작성했다. 결국 부모님은 빚을 내서 컴퓨터를 들여놨지만 김 대표는 이틀 만에 흥미를 잃고 6개월 동안 전원을 켜보지도 않았다. 어린 소년에게 컴퓨터는 문서 작성에는 편리해도 재미있는 도구는 아니었다. 불만을 품은 김 대표는 동네 서점에서 ‘C++’ ‘비주얼베이직’ ‘델파이’ 등 프로그래밍 서적을 구입해 닥치는 대로 파고들었고,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컴퓨터로 어떤 프로그램이든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그는 교과서 내용을 바탕으로 퀴즈 게임을 만들어 컴퓨터 수업 시간에 선보였다. 퀴즈에 실제 친구들 이름으로 넣었더니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중3 때는 선생님들을 위한 교육용 발표 제작 프로그램을 만들어 전국 학교에 무상으로 배포했다. 김 대표는 이때 ‘IT와 교육을 접목하면 공부가 재밌어진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이 무렵 서울의 한 일반고에서 기숙사비를 대 줄 테니 입학하라는 제안을 해왔고, 그는 전형적인 전교 1등은 아니었지만 뛰어난 컴퓨터 실력으로 카이스트에 진학했다. 카이스트에서 산업디자인으로 눈을 돌린 건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아버지와 그로 인해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23세 되던 해에 친구 4명과 함께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얼마든지 운전을 할 수 있도록 ‘생각으로 가는 자동차’를 개발했다. 운전자가 직진·우회전·좌회전을 하려고 생각할 때마다 미세하게 달라지는 혈류량과 속도를 이용한 기술로, 세계적인 한 자동차기업이 200억 원에 기술을 사들여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일명 ‘유니버셜 사고’를 강조했다. 상식적이고 보편적이라 국경의 제한이 없고, 인간 중심적이라 민간뿐 아니라 공공부문에도 잘 적용되는 그만의 사고 방식이다. “모두가 장애인 관련 기술은 돈이 안 되고 어렵다고 했어요. 하지만 전 장애인들이 쓸 수 있으면 일반인들은 더 쉽게 쓸 수 있고, 공부도 제일 못하는 사람이 할 수 있으면 잘하는 사람은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스마트 스쿨도 이런 마인드에서 비롯된 겁니다.”

 문제는 가격이다. 아이카이스트에서 개발한 대형 멀티 터치테이블은 65인치를 기준으로 1000만 원에 달한다. 김 대표는 이 문제를 렌탈시장, 광고시장, 기부문화 활성화 등을 통해 풀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대여형식으로 하면 월 1만 원에 멀티 터치패널 테이블을 사용할 수 있는데, 현재 모 금융회사와 스마트 렌탈사업이란 이름으로 시판을 준비 중이다. 기존 광고주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학교와 가정도 블루오션이다. 우유나 교복 광고처럼 유해하지 않은 광고를 잘 선별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회사도, 광고주도, 소비자도 모두 윈윈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복안이다. 가장 보수적인 교육시장을 뚫으면 다른 분야는 훨씬 쉽다는, 이 역시 유니버셜한 사고다.

 김 대표의 목표는 전 세계 스마트 스쿨의 표준과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미래의 교육 형태는 스마트 스쿨이라는 확신아래 ‘교육 한류’를 심겠다는 발상이다.

 이를 위해 50개국의 언어를 지원하는 한국형 스마트 스쿨 솔루션을 일본과 중동에 수출하고 있고, 최근 중국의 차세대 핵심 지도자인 후춘화(胡春華) 광둥성 당서기와 만나 연내 광둥성에 시범학교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라크 등 전쟁을 겪거나 교육여건이 열악한 지역엔 스마트 스쿨 기술을 설치한 ‘스마트 컨테이너’를 간이교실로 제공할 계획이다. 이 경우 유엔이나 유니세프, 세계적 대기업이나 재단이 후원자가 될 수도 있다.

 2~3년 안에 미국 나스닥과 중국 증시에 상장하는 일도 현재로선 순조롭다. 김 대표는 스마트 스쿨 시스템을 통해 전 세계 학생이라는 독특한 집단을 연결하고 콘텐트가 오고 가는 플랫폼 기업이 될 경우 ‘페이스북 정도의 기업가치를 가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김 대표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창조경제, 창조기업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최근 들어 모두가 대답하기 어려워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창조경제의 정의를 내린 다음 그에 맞춰 기업을 하기보다 먼저 성공한 대표주자의 사례로부터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면서 창조기업의 4대 핵심으로 창업과 고용창출, 융합, 해외수출을 꼽았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카이스트는 20대 청년이 창업을 하고, 4명으로 시작한 기업이 80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IT와 교육이라는 융합을 이뤘으며 활발히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창조경제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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