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무자원」위에 세운 일등국」<중>|무자격은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스위스」라는 나라는 얼른 납득이 안가는 점이 많다. 우선 7명의 장관이 1년씩 번갈아 가며 대통령을 하고 있으니 대통령 이름도 기억 못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겨우 경상남·북도만한 땅덩어리에서 25개의 「캔톤」이 제각기 독립국가나 다름없는 행세를 하고 있으며 국어만 해도 4개나 된다. 사람들마다 교육의 중요성을 그렇게 강조하면서 정작 문교부라는 건 없다.
TV방송의 어린이「프로그램」은 독·불·「이탈리아」어는 물론이고 1%도 안되는 소수국민을 위해「래토·로만」어 방송이 빠지는 일이 없고 정부관리들이 아무리 UN가입이 옳다는 생각을 한다해도 국민투표에서 안 된다면 그만이다.
이런저런 비능율과 낭비적인 요소가 잔뜩 널러 있지만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주어진 조건아래서 최대의 효율책』 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생활상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그들이 만들어내는 정확한 시계내부의 크고 작은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서로 물고 물려 돌아가는 느낌이다.
갖가지 문화적·사회적 상이점속에서 그들은 용케도 조화를 이루어가고 있다. 선진국일수록 노조의 「스트라이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이 나라에서는 1937년의 노사평화협정이 체결된 이후 단 1건의 「스트라이크」도 없었다.
「르웩」이라는 외무생 한국담당관은 이러한 자기네들의 복합된 국민성을 『타협적인 국민(Compromising People)』이라고 자평했다. 그 타협은 철저했던 용병의 역사속에서 가난을 극복케 했던 마지막 해답이었다는 것이다.
「메이드·인·스위스」의 성가를 이해하려면 우선 그들의 교육제도부터 살펴보아야 한다.「캔톤」마다 교과내용도 다르고 학제도 상이하지만 오늘날의 기술축적은 직업훈련중심의 교육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학교과정을 마치면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게 되는데 90%정도가 직업과정을 택한다.
누구나가 2∼4년간의 수습을 거쳐야 독립된 근로자로 대우를 받는다. 주유소종업원이 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2년의 수습을 거쳐야 하고 관광회사 안내원도 3년이상의 수습기간이 필요하다.
어느 회사에서든 수습을 받을 수 있으며 이 기간이 끝나면 희망하는 직장에 취직이 된다. 수습동안의 평점은 평생을 두고 따라 다닌다.
중세「유럽」의 도제제도보다는 훨씬 근대화된 형태이긴 해도 이 수습제도는「스위스」국민전체의 가장 중요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제품을 완전하게 만드는 법을 배우고 맡은바 전문가가 되어야 비로소 완전한 직장인으로 대우를 받는다. 수습생인 동안은 실수가 인정되지만 일단 끝나면 자기가 맡은 일에 한치의 어김도 없어야 한다. 우선 소비자나 고객들이 이를 용납지 않는다. 그들 모두도 이같은 훈련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빌」의 어느 기계공장을 들렀을 때 안내직원이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소개한데까지는 좋았으나 『기능「올림픽」에 우승한 한국의 기술수준은 대단하겠다』고 지례짐작하는 한 청안의 수습공의 앞에서는 뭐라고 대꾸를 해야할지 난처했다.
시계공학의 명성이 기계공업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기계공장을 가보면 아담한 분위기를 느끼게 할 정도로 소규모다. 「스위스」기업인들은 공장의 크기보다는 우선 그 공장의 역사가 얼마나 됐느냐 부터 따진다.
산업구조 자체도 오히려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짜여져있으며 이들이 바로 기술축적의 발판이 되어 왔다. 금속공업의 경우 종업원 1백명미만의 중소기업형이 전체공장의 80%를 넘고 있지만 국내 대기업들 뿐아니라 서독 등지의 유명 「메이커」들도 이들로부터 주요부속품을 공급받고 있다.
『적어도 50년을 넘어야 그 회사 제품을 믿을 수 있지 않겠읍니까』-.
기계공업조합의 한 간부는 지극히 당연한 듯이 반문한다. 기업의 역사는 제품의 가장 훌륭한 보증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양보다 질이라는 생각은 어딜가나「스위스」인 모두의 신조처럼 느껴졌다.
1천명에 1명꼴로 특허권을 갖고 있다는 통계숫자나 제약회사의 연간연구개발비가 지출의 53%나 된다는 사실도 얼른 납득이 가질 않았다. <이봉규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