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과 시연의 ?문…신춘문예 <3>|나의 데뷔시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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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벌써 12년전인가, 67년도에 나는 대학2학년이었다. 모두가 작가·시인에 평생의 꿈을 걸고 모여든 문학청년들로 문학열과 바람이 유난히 드센 학교였고, 나 역시 작가가 되리라 작정한 것은 오래건만 별반 소실을 쓰지못하다. 1학년때 딱 한편의 소설을 쓰지 못했다. 1학년때 딱 한편의 소설을 쓰고 스무살 나이의 절망·외로움·환상따위에 시달리며 발밑만 보고 학교와 집을 오갔다.
그러면서도 제일 두려웠던 건 소설을 쓰겠다는 말만으로 지내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2학년 2학기, 나는 뚜렷한 이유없이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중이나 될까, 고아원의 보모로나 갈까, 아니면 자살이라도 할까 하는 막바지에 이른 심경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낡은「메모」첩을 뒤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밤에는 쥐처럼 깨어 집안을 돌아다니고, 낮에는 문걸어 잠그고 해가 발뒤꿈치에 내릴때까지 잠을 잤다.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나니 꼭 60장. 『완구점 여인』이라는 제목을 달아 모집 마지막날 거의 마감 시간에 중앙일보 건물앞을 근30분이나 서성거리다가 접수구에 던져넣었다. 당선은 계산에 없었다.
12월24일 아침 당선통지를 받고도 이상할이만큼 덤덤했으나 그날 점심먹은 것이 관격이 들려 「크리스머스」를 사경속에서 보냈다. 앓으면서 나는 동생에게 말했다. 멋있는 「스케이트」사줄께. 그해 어느 신문사보다 중앙일보 상금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어느 주간지에서 제2작 청탁을 받고 근 보름밤을 새우고 살이 5kg이나 빠졌다. 비로소 습작기가 시작된 느낌이었다. 그뒤로 10년이 넘었건만 글쓰는 일은 더욱 어려워만 간다. 한줄도 못쓰고 끙끙대며 멍청히 앉아 새우는 밤은 문자 그대로 악몽이었다.
또 다시 신춘문예 철이오고, 지금 이 시간에도 10년전의 나처럼 전국 곳곳에서 작품을 만들기에 고심할 미래의 시인·작가들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 뭘하고 있는가 불안해진다.
사람들이 항상 출발점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듯, 다시 시작하고 싶어하듯, 아무리 내가 나이를 더먹고 많은 작품을 쓴다해도 새해 첫날아침 신선한 얼굴과 글을 대할 때의 질투와 선망은 계속되리라. <68년도 신춘 「중앙문예」 당선·79년 이적문학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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