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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용산 마권 장외발매소, 3개월 시범운영이라도 해봐야 … ”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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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호 20면

현명관 한국마사회장이 11일 과천 렛츠런파크 집무실에서 용산 장외발매소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춘식 기자

서울 용산 지역이 시끄럽다. 한국마사회가 지난달 28일 경마장 밖에서 경마를 즐길 수 있는 ‘장외발매소(렛츠런CCC.)’를 임시 개장하자 인근 주민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장외발매소는 원래 용산역 부근에 있었다. 이걸 용산 전자상가 쪽으로 옮겨서 확대·개장했다.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원회)’측은 연일 반대 집회 중이다. “장외발매소가 성심여고 학교 정문에서 불과 235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주거환경은 물론 학생들의 학습권과 안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현명관 한국마사회장

불길은 정치권으로 번졌다. 10일 현명관(74) 한국마사회장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출석해 “3~4개월간 시범운영을 해보고 과거와 같은 장외발매소의 구태를 단절하지 못하면 용산발매소를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견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11일 과천 렛츠런파크 서울(옛 서울경마공원)에서 현 회장을 만나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삼성물산 회장을 지낸 그는 지난해 12월 부터 제34대 한국마사회장을 맡고 있다. 현 회장은 “시범운영을 해보고 나온 결과가 주민들의 우려대로라면 (장외발매소의) 문을 닫겠다”고 말했다.

-용산 장외발매소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심각한데.
“솔직히 장외발매소는 기피하고 싶은 시설이었다. 책임은 마사회에 있다. 자업자득이다. 죄송하다. 하지만 용산 장외발매소는 다르다. 이곳은 마사회 장외발매소가 새로 태어났다는 걸 보여주는 시금석같은 곳이다. 장외발매소 건물 18개 층 중 6개 층은 인근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공간으로 할애했다. 기존 장외발매소는 대개 입석식으로 2000원의 입장료만 내면 들어갈 수 있지만 용산은 1500석 규모로 입장을 제한했다. 입장료도 종전의 10배인 2만원이다. 우리에겐 새로운 혁신 모델인 점포다. 3개월간 시범운영을 해보고, 객관적으로 나온 결과가 주민의 우려대로 학습권과 환경권 등을 심각하게 해친다면 깨끗하게 포기하겠다.”

-장외발매소를 놓고 주민투표를 하자는 요구도 있다.
“이걸 놓고 주민투표를 하는 게 온당한가. 주민투표를 하면 주민 내부에서도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으로 갈린다. 이러면 갈등이 되레 심해진다. 또 현 상태에서 투표는 기존 장외발매소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토대로 이뤄진다. 백번양보해서 투표를 한다해도 실제 시범운영을 해보고 거기서 나온 결과를 주민들이 공유한 뒤 투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장외발매소 개장을 고집하는 이유는.
“장외발매소는 말(馬) 산업의 기초다. 흔히 경마는 과천·부산·제주에 있는 경마공원에서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오해다. 경마공원은 경마를 운영하기 위한 토대다. 말을 키워내고 경주가 이뤄지는 공간이다. 제조업으로 치면 생산시설이다. 장외발매소는 이 생산품이 판매되는 유통 채널이다. 어떤 기업이 생산만 해서 살 수 있나.”

국내에는 현재 30개소의 장외발매소가 있다. 이곳에서 마사회 전체 매출의 72.4%(5조5810억 원)가 나온다. 일본엔 45개의 장외발매소가 있다. 경마 선진국인 영국엔 8500여개가, 프랑스엔 1만1800개가 각각 운영 중이다.

-용산 이외의 다른 장외발매소는 어떻게 바꿀 것인가.
“변신이 없다면 마사회는 국민과 지역 사회 주민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 그런 사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장외발매소 혁신 3개년 계획을 만들었다. 당장 올해부터 시작해 2016년까지 장외발매소를 주민 친화적으로 만드는데 주력하겠다. 여기에 총 652억 원을 투자한다.”

한국마사회는 장외발매소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장외 혁신 3개년 로드맵’을 세워 추진 중이다. 기존 발매소를 복합문화 공간으로 꾸민다는게 골자다. 뿐만 아니라 기존 장외발매소 주변의 치안활동을 강화해 안전도도 높이기로 했다.

사실 장외발매소의 안전문제는 마사회 입장에서도 고민거리다. 2012년 12월에는 서울 영등포구 모 빌딩 7층에 위치한 장외 발매소에 50대 남자가 불을 지르기도 했다. 장외 경마에서 20만원을 잃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장외발매소 및 그 인근에서 치안활동을 강화해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경마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사태의 근본 원인 아닌가.
“그간 마사회가 제대로 못해서 그렇다. 아쉽고, 안타깝다. 장외발매소를 우리 지역에 설치해 달라고 주민들이 요청토록 만드는 게 목표다. 그게 1단계다. 그런 다음엔 전국의 경마공원들을 가족 단위로 찾는 공간으로 만들 것이다. 경기 과천시에 있는 ‘렛츠런파크 서울’만 봐도 여건은 충분하다. 서울과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 정도로 훌륭한 환경을 갖춘 곳이 어디있나.”

-온라인 경마같은 대안은 없나.
“온라인 마권 발매가 가능하다면 장외 인력은 줄어들거다. 일본은 전체 매출의 60%가 온라인에서 나온다. 온라인 발매를 허용한 뒤 장외발매소 인근 환경도 더 좋아졌다. 홍콩도 온라인 매출이 전체의 68.6%를 차지한다. 경마 서비스를 하는 곳 중 온라인 마권 발매가 금지된 곳은 한국 뿐이다. 우리나라도 2009년까지 온라인 발매가 가능했는데, 여러 이유 때문에 중지됐다. 그 바람에 불법 사설 경마 시장이 더 커지는 부작용을 낳았다.”

당시 법제처는 ‘온라인 마권 발매는 법적 근거가 없어 불허해야 한다’는 법령해석을 내렸고 이에 따라 마사회는 온라인 마권 발매를 중단했다.

-주민들의 반발도 이해되지 않나.
“주민들의 마음도 이해한다. 그러나 용산 장외발매소 이전은 합법적으로 진행된 사업이다. 3년이 넘는 시간과 1300억 원에 달하는 자금이 들었다. 그런데 그 건물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시범운영 결과가 나쁘면 깨끗하게 접겠다는데 이것도 하지 말라고 한다. 이건 법치주의가 아니다. 마사회는 법과 행정청을 믿고 투자했다. 그 결과에 대한 신뢰는 국가가 지켜줘야 한다. 안그러면 어떤 기업이 거금을 투자하고, 경영 계획을 짜겠나. 마사회는 지난해 지방세를 포함해 1조 4432억원의 세금을 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수준이다. 사회공헌에도 열심이다. 무작정 부도덕한 기업으로만 매도받는 현실은 서글프다.”

-수년째 매출이 제자리 걸음인데.
“머잖아 인천 영종도에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들어온다. 또 외국의 일류 경마 경주도 수입하게 될 것이다. 지금 한국 경마의 수준으론 여기에 맞설 경쟁력이 있을까. 이번 일로 외부에서 우리 마사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확히 알게 됐다. 마사회 내부에선 ‘달라지지 않으면 큰 일이 날 것’이란 공감대도 생겼다. 이번 사태가 전환점이 될 것이다. 대책위 원회 주민들에게도 3개월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드린다.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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