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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 없는 정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여야영수가 초대면을 갖고 새 시대의 정치상에 관해 환담을 나누면서 평화적 정권교체의 기틀을 마련하자고 했는가 하면 이에 앞서 신민당은 국회기조연설에서 역시 평화적 정권교체와 이를 위한 「보복 없는 정치」를 주창하고 나섰다.
지난날의 우리정치사를 볼 때 구각을 벗고 새 질서를 가다듬어 나가는 오늘의 전환기적 정치상황에서 여야지도자가 국민의 오랜 소원인 평화적 정권교체를 다짐하는 것도 우연한 일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평화적 정권교체를 가능케 하는 조건은 무엇이며 그 기틀은 어떻게 해야 마련되는 것인가.
이 의문에 대한 완벽한 해답이란 논리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나 구체적인 한나라의 정치·사회·경제적 제여건과 관련시켜 추구하면 완전한 답에 이르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전통과 전례를 세워나가야 하는 이 시점에서 이 문제를 끝내 도외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는 것이며, 평화적 정권교체를 가능케 하기 위한 단편적인 해답이나마 시도하여야 한다.
신민당이 일찍부터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해 「보복 없는 정치」를 주장하고, 이 시점에서 다시 그것을 재확인한 것은 우리 정치사상 명기되어야할 현보적인 접근방법이라 아니할 수 없다.
누가, 어느 당이 집권하든 집권 전에 겪은 고통이나 울분을 권력으로 보복코자 한다면 또다른 고통과 불만의 대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되고 그 보복이 크면 클수록 대상이 겪는 고통과 불만도 커질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불만세력·소외세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보복을 한 자는 오히려 보복을 두려워하는 입장에 서게되고 권력상실이 곧 자기파멸로 연결되는 상황에 빠지고 만다.
이것은 도식적인 보복정치의 악순환을 말한 것이지만 이렇게 될 경우 확실히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민주정치의 기본적 요청이 짓밟히게 될 것은 명고관화하다.
오랜 기간 불우한 야당위치를 겪어온 신민당이 이런 문제를 먼저 제기하게 된 것도 자기들의 오랜 경험의 바탕이 있었기 때문이며 이런 악순환을 되풀이해서 안되겠다고 느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보복 없는 정치」의 확립은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해 비록 충분한 조건은 아니지만 최소한 필요한 조건일 것이다.
이는 한 국가 또는 한 사회의 실체를 보존·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보복의 악순환이 안정과 조화를 깨고 사회를 혼란·분열로 이끌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새 질서의 정립에 참여하는 모든 관련자가 1차적으로「보복 없는 정치」에 합의하고 이를 제도화할 수 있다면 앞으로 새 질서로 가는데 있어 훨씬 순탄한 과정의 진행을 기대할 수도 있으리라고 믿는다.
우리는 남북전쟁후 당시 미국대통령 「링컨」과 「앤드루·존슨」이 발한 『남부제주를 위한 대사면령』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싸운 남북부 미국민을 단합·융화시키는데 기여한 사례라든가, 17세기 「크롬웰」의 공화혁명으로부터 영국왕좌에 복귀한「찰즈」2세의 대사령(Act of Oblivion)이 『단합 위의 민주화』에 기여한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게 우리도 단순히 과거에 정치적 반대편에 서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보복 당할 염려는 없도록, 그리하여 국민적 단합을 고양할 수 있도록 할「보복 없는 정치」의 제도화를 모색해 볼만한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하고 그런 바탕 위에서라야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확립도 추구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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