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서구 속셈다른 접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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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탈리아」방문을 끝으로 23일동안의 긴「유럽」여행을 마치고 북경으로 돌아가는 화국봉의 가방속에는 사상 처음으로 중원의 지도자가 서구 나들이를 했다는 역사적 계기를 통해 나올법한 묵직한 외교문서는 하나오 들어있지 않은 것 같다.
기껏해야 실무자선에서 서명할만한 문화협정과 기술계약 몇건 정도가 문서상으로 남은 「유럽」순방 결산의 전부인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국봉의「유럽」순방은 근년에 볼수없던 최대의 외교행사로 취급되고 그를 맞이한 「프랑스」·서독·영국·「이탈리아」정부는 다투어 최상급의 의전절차로 화일행을 영접했다.
가시적인 결과가 없으면서도 중공과 「유럽」국가들이 다같이 외교상 획기적인 사건으로 취급하고있다는 점이 화의 이번 여행이 갖는 특징일 것 같다.
그러한 특징은 서로 다른 동기를 갖고 상대방에 이끌리고 있는 중공과 서구의 불균형된 관계를 잘 설명해 준다.
서구쪽에서 볼때 화국봉은 두가지 점에서 귀빈이다.
대소련 호전성이 NATO와 「바르샤바」군간의 군사력 균형에 중요한 균형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소련은 중소국경에 전 지상병력의 3분의1인 45개사단과 공군력의 4분의1을 배치하고 있다.
중공이 계속 소련의 「패권주의」에 적대감을 보이는 한 이 방대한 병력이「유럽」전선으로 이동해서 NATO에 압박을 가할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둘째 이유는 9억이란 중공인구가 갖고있는 시장의 잠재성이다.
지난해의 중공 「러시」에 이어 중공은 당분간 자체수용 능력을 점검할 동안 일체의 대외수주를 중단하고 있지만 점검이 끝나는대로 다시 시장이 개방될 것으로 보고 화를 제1의 고객으로 대접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가지 이유중 둘째 이유에 대해서는 4대현대화정책으로 금세기중 중공을 강대국으로 일으키겠다는 중공지도자들과「유럽」지도자들의 이해가 일치하지만 첫째 이유에 대해서는 서로가 다른 동기에서 접근하고 있다.
「유럽」으로서는 중공이 소련군사력 일부의 발을 묶어 놓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게 생각하지만 그런 중공의 역할이 「유럽」과의 전략적 유대관계로까지 확대되는 것은 바라기 않고 있다.
왜냐하면 중공의 지나친 접근으로 중소분쟁이 「유럽」으로까지 파급될 경우 힘겹게 쌓아올린 소련과의 공존관계가 위협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뜻에서 「유럽」은 소련을 『낯익은 악마』로, 중공을 아직 『낯선 악마』로 취급하고 어차피 양자택일을 할 입장이라면 낯익은 악마쪽이 더 마음 편하다는 분위기인 것이다.
그래서 화국봉이 이번 방문중 기회 있을 때마다『단결되고 강력한「유럽」』이 패권주의(소련)의 위협에 맞서야 된다고 반소발언을 했을 때 서「유럽」지도자들은 말썽많은 손님을 대하듯 참으면서 화제가 빨리 상담쪽으로 옮겨가도록 유도했다.
이 문제에 가강 신경을 쓴 나라는 촤전방 위치에 있는 서독이었다.
동방외교의 성공으로 힘겹게 공존관계를 마련한 서독은 화국봉이 「베를린」장벽을 방문하려는 것을 만류했고 또 소련을 공격하는 발언을 최소한으로 봉쇄하기위해 여러면으로 화국봉에게 암시를 던졌다.
「파리」와 「런던」에서는 그러한 노골적인 견제는 없었기 매문에 축배를 들때마다 소련을 공박하고 『평화란 구걸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전쟁은 양보한다고 피할수 있는것이 아니다』는 투의 호전적발언을 했지만「지스카르」대통령이나「대처」수상은 묵묵히 듣기만했지 이에 호응하지 않았다.
서구쪽이 전략면에서 침묵을 지켰듯이 교역문제에 있어서는 화가 어떤 언질도 주지 앉았다. 그는 가는 곳마다 공업중심지와 농촌을 견학했다. 화국봉쪽에서 서구를 이해하려는 열의는 대단했다.
방문단 42명중 수뱅원이 15명이고 기자가 27명이었다는 사실은 서구의 경제발전상을 중공인민들에게 본보기로 소개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영국의 한 관리는 『왕관에 박힌 보석을 빼놓고는 무엇이든 팔 용의가 있다』고 말했는데 아마 화를 영접한 네 나라의 관리들이 모두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중공과의 상거래 전망이 예상만큼 밝은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중공의 인구는 9억이지만 구매력은 현재 인구 6백만명의「스위스」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앞으로 중공의 시장을 키우려면 서구의 기술과 자본을 엄청나게 쏟아넣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제2의 공산대국을 육성하는 것이 서구를 위해 바람직하냐는 의문도 제기되고있다.
그러나 그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화국봉의 서구 나들이는 중공을 세계무대에 등장시키는 과정을 본궤도에 올려놓았다는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며 단기적으로 예견되는 중공상품의 「유럽」진출은 한국의 수출전망에도 큰 압박을 가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런던=장두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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