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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민생활 자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미국에 살고있는 한국인 중에서 이민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숫자는 전체의 절반을 조금 넘는 52·4%에 불과하고 47·6%가 이민 온 것을 어쩔 수 없는 일로 체념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앙일보가 창간 14주년 기념사업으로 재미동포 1천1백6l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 의하면 한국인들의 거의 절반이 높은 소득에도 불구하고 언어장벽·인종차별·소외감 같은 문화적인 갈등으로 이민생활에 만족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미 한국인들은 직장에서의 「일」보다는 거기서 얻는 「수입」에 더 큰 만족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들의 중간소득은 연 2만3천6백76「달러」(한화 약1천l백만원). 미국인 가정의 연평균수입 2만5백 「달러」보다 많아 저소득층이라는 의미에서의 소수민족의 단계를 넘어서고 있다. 한국인들의 소득이 이렇게 높은 것으로 나타난 이유는 작업시간이 길고(1일 평균 9·23시간)가구당 취업인구가 많기(가정당 2·04명)때문이다.

<거의 휴일근무·시간외 작업>
「자녀교육」이 이민의 가장 큰 동기였다고 말하는 재미한국인들은 가족의 「내일」을 위해 「오늘」의 나를 희생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남들이 쉬는 주말에도 일을 하는 교포가 거의 반수(45%)나 되고, 남들처럼 정상적인 시간(오후5시)에 하루의 일을 마치는 교포는 61% 일뿐, 교포 10명 중 네 사람은 남들이 쉬거나 자고있는 시간에 일을 하고 있다.
직업은 봉제공·청소부에서 회사원·의사·공무원·대학교수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며 직업분포를 보면 전문직 42·5%로 압도적이고 노무직 25·4%, 자영 25·1%, 그리고 사무직 6·8%의 순이다. 노무직의 경우 대부분이 기능공이나 숙련공인 것을 보면 전문지식이나 기술 없이는 미국에서 발붙이고 살기 어렵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사무직보다 전문직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언어문제와 문화적인 배경의 차이가 미국의 조직사회에 당장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없는 사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평균 이민햇수 5·3년 불과>
언어문제는 심각하다. 30%가 영어 때문에 고생이라고 응답했고, 「아예 영어는 포기했다」는 반응도 5%이고 불편이 없는 정도가 47%, 그리고 「유창하다」는 응답은 18%에 불과하다.
전문용어가 아닌 일상영어로서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요구되는 일반사무직 (예, 회사원·은행원·공무원)에 적극 참여하기란 평균 이민햇수가 5·3년밖에 안 되는 한국인들로선 당분간 감당키 어렵다는 결론이다.
한국인들은 또한 사회전반에 걸친 인간관계보다는 한정 된 범위에서 사실상 격리된 생활을 하는 경향이 짙고, 서양문화권에 쉽게 동화되지 않는 민족임이 밝혀졌다. 「빵과 버터」 보다는 쌀밥에 김치를 주식으로 삼는다는 교포가 응답자의 78%. 응답자 3명 중 두 명이 백인지역에 살면서도 이웃과의 왕래는 월1회 정도라고 대답하여 철저하게 한국인들끼리만 모여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인끼리만 모여 살아>
교포들이 한·미 두 사회를 보는 눈은 정확하여 이민생활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를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 같다. 미국생활에서 보람을 느끼는 일로는 적당한 노력의 대가 (45%)와 좋은 환경의 자녀교육 (22%)이 상위를 차지하고 이민생활의 어려움으로는 언어장벽 (47%)과 인종차별 (11%)을 첫손에 꼽았다.
「두고 온 조국」을 보는 그들의 「한국관」은 경제발전(24%)이 가장 인상적이고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물가고(13%)가 으뜸이었다.
가구주의 평균연령은 38·7세. 미국평균 거주연수는 5·3년.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한국의 이민사는 이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장은 대학 출신이 66%>
응답자의 66·5%가 대학출신, 미국시민권을 얻은 사람은 29% 정도로 나타났다. 이민방법은 34%가 형제자매의 초청, 10%가 취업이민이었다.
세칭 두뇌유출의 경우라 할 전문직 종사자(예, 의사·간호원·「엔지니어」)의 이민이 23%지만 이 분야는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경향이다.
교포 가정당 자녀의 수는 평균 2·02명. 가정 내에서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는 이민초기답게 「화목하다」는 의견(81%)이고 자녀의 국제결혼에 관해 선 72%가 찬성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집안에 부모 혹은 장인·장모를 모시고 사는 가정은 10가구 중 두 가구 꼴.
자녀들이 한국말을 못해 걱정이라는 의견은 응답자의 17%로서 특히 미국에서 오래 산 교포들이나 웃어른을 모시고 사는 가정에서 이러한 걱정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응답자의 74%가 한국에서 결혼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중 40%가 이민이후의 결혼생활이 한국에서보다 더 좋아졌다는 의견이고 50%가 마찬가지, 나빠졌다는 반응은 10%에 불과하다.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흥미로운 사실은 노후를 끝까지 미국서 살겠다는 사람은 38%뿐이고 10명중 6명은 목표가 달성되든지 노후는 한국에서 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에게는 미국이민이 아직은 생활의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라는 의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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