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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정책 축소 조심조심 추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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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처」여사가 선거를 앞두고 사회복지시책을 대폭 축소하는 복고주의 정강정책을 발표하던 자리에서 한 외국기자가 물었다.
『그런 정책을 밀고 나가려면 경찰력을 2배는 늘려야 할텐데 그럴 용의가 있는가」 「대처」는 『당신과는 주파수가 맞지 않는다』고 응수는 했지만 자신이 내어놓은 정책이 초래할 정치적·사회적 결과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다.
「대처」가「다우닝」가 10번지의 수상관저에 들어서면서 의견상 변한 것은 관저 앞에 목책이 세워진 것이다.
관저정문까지 일반인이 접근해서 그 곳을 지키는 경찰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있던 영국특유의 온화한 분위기는 수상관저 주위에서 사라졌다.
수상관저 앞의 목책은 「대처」의 등장이 영국사회에 몰고올 변혁을 예고하는 하나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다.

<동혁을 예고하는「심별」로>
「대처」는 영국이 지금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이 「육지국가」라는 평등주의 이념에서 파생되는 모든 사회적·경제적 현상 속에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영국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시민을 국가가 보살펴 줄 의무가 있다는 개념을 역전시키고 자유기업이라는 자본주의의 초기 형태로 어느 정도 후퇴해야된다고 믿고 그런 정책들을 현재 조심스럽게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그걸 「아기가 성인이 되게 하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다른 쪽에서는「아기를고아로 만드는 잔인한 행위」로 받아들인다.
어느 쪽이든 고통은 따르게 마련인데 특히 저소득층 노동자계층은 어렵게 얻은 최소한의 안정을 다시 잃어버리게 된다는 공포에 사로 잡혀있다.
「대처」의 의도를 지지하는 측에서 보면 그것은 영국병을 치유할 수 있는 한가지 시도다.
서구사회에서 처음 있는 이 엄청난 시도가 앞으로 겪을 난관을 생각해서 「대처」의 목표를『「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하는 작업』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직은「베이스·캠프」를 설치한 정도이니까 그녀의 정책이 수반할 사회적 결과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오는 겨울 노조의 임금인상과 노조규제법의 제정을 둘러싸고 정부와 노조간에 첫 접전이 벌어지게 된다.

<국민성수향배에 최대관심>
그때 일반국민이 어느쪽으로 성원을 보낼 것이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사회혼란이 올 것이냐가 현재 영국정계에 쏠린 최대의 관심사다.
그런 관심은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났듯이 후기상업사회의 문제해결도 영국에서 먼저 나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는 다른 서구공업국들로부터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대처」가 처음 수상으로 당선되었을 때 영국의 한 신문은 『영국이 투기를 했다』고 평했다.
영국경제를 놓고 과거 15년 동안 보수당과 노동당을 골고루 앉혀봤지만「백약이 무효」였으니까 「대처」의 과격한 복고주의에 마지막 기대를 걸어보자는 막연한 기대감과 좌절감이 「대처」의 등장을 밀어주는 분위기를 제공했다는 뜻이다.
「대처」를「잔·다르크」에도 비유한다. 패망해 가는「프랑스」의 운명을 무명의 소녀에게 맡겼듯이 영국은 교육상의 경력밖에 없는 여인에게 국가의 체질개선이란 엄청난 과업을 맡겼다는 불안감이 그런 비유뒤에 도사리고 있다.

<위기빨리와야 콧대 꺾는다>
「가디언」지는 실업자들을 무더기로 단두대에 싣고가는 광경을 뜨개질을 하면서 구경하는 「대처」여사와 그 뒤에서 환호하는 귀족 등의 모습을 만명으로 그려놓고『「대처」는「쿠데타」를 주도한 영관급 장교같다』고 혹평했다.
보수당에 호의적인「파이낸셜·타임즈」지도「대처」여사가 오래가기 어려울 것이라는전망기사로 보수당 1백일을 장식했다.
그런 배경 속에서「대처」를 열렬히 지지하는 쪽은 사태가 험악해지면 정책을 후퇴시키지않을까 조마조마해 하면서 『불의 심핀』을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그녀지만 현재와 같은 배짱으로 앞으로 닥쳐올 십자포화를 견뎌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반면 그녀를 배척하는 쪽에서는 제발 그런 위기가 빨리 와서 그녀의 콧대를 꺾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영국의「딜레머」는 경제부활은 모두가 원하면서도 그 실현을 위한 변혁에 수반될 부작용을 두려워하고 있다는데 있다.
그와 같은 「딜레머」는 사실 우경화추세를 나타내고 있는 서헐전체의「딜레머」라고도할 수 있을 것 같다.
50년대의 절후복구시대를 발판으로 60년대의 낙관적 경제성장시대를 맞았던 서구는 70년대의 좌절기를 겪으면서 성장이란 물질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정신적 측면에서도 한계가 뚜렷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그런 체험은 우선 중산층의 좌절감으로 나타났고 그 좌절감에서 우파경향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서구의 우파경향이란 것이 아직은「대처」류의 확연한 형태로 드러나지 않은 채 암중모색을 하고 있는 중이지만 그 첫 희생이 번영의 시대에 이룩했던 사회주의형 복지정책이 될 가능성이 짙어 지고있다.

<사회불안 감당이 고민거리>
그러나 그런 변혁이 필연적으로 몰고올 사회불안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가 큰 고민이다.
지난 연말 「프랑스」에서 일부철강공장을 폐쇄했을 때 실업사태를 우려한 노동자들이 일으킨 일련의 폭동사태가 불길한 예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우닝」가 10번지 앞의 목책은 조심스런 도전장 같은 것이다.
성장시대로부터의 후퇴가 목책으로 막을 수 있는 정도의 반발만 유발한다면 별 문제지만 그 이상의 혼란이 올 경우 우경화의 방향은 재조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 목책은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대처」가 이번 겨울에 겪은 첫 격전은 그러니까 서구전체가 80년대에 지향할 방향을 모색하는 일종의 탐색전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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