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경험적 의견과 「오늘」을 있게 한 「자랑스런 어제」를 존중해주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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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 수명은 남자 66세, 여자 70세라고 한다. 그 중 60세 이상 연령이 전체 인구의 5.7%라고 하는데 이 숫자는 평균 수명이 매년 연장됨에 따라 더욱 증가하는 현상을 보일 것이다.
이것은 세계 제일이라고 뽐내는 이웃 일본의 평균 수명(남자 73세, 여자78세)에 비할 때 많이 뒤지긴 하지만 우리는 지금 확실히 두보가 읊은 인생칠십고내희란 시구가 무색해진 그런 인간만세의 시대에 살고 있음이 자명하다.
인간 생명의 이와 같은 연장은 각종 공해로 시달림 받고 있는 오늘과 같은 상업지향 사회에 있어서 인간의 존엄성문제를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조짐이며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처럼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노인층이 많아지는 현상은 또 다른 측면, 즉 활기찬 삶에서 어쩔 수 없이 소외돼야 하는 노인들로 해서 빚어지는 갖가지 사회적 문제에 부딪침을 면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비단 이 시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류가 존속하는 한 그 어디서나 계속 문제될 그런 심각한 부딪침일 것이다. 육체의 노쇠현상에 따른 외관상 추하고 한심스런 그런 노년기는 누구나가 거쳐야 하는 숙명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인문제는 지금 이 시대보다 미래가 더욱 심각하고 드디어는 어떤 비극적 양상까지를 예감케 하는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고 봐야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슬금슬금 뒷전에 처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늙음이다.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너희들보다 젊다는 그런 오기와 자위로 눈물겹게 버텨 보는 것도 잠시요,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정말 이 세상 천지에 아무 쓸모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의 그 허탈과 좌절과 허망함과… 이제까지 이룩해 놓은 그 찬란한 인생 경륜도 보람없이 폭삭 허물어져 더없이 심약해지고 눈물 질금거리며 절뚝절뚝 인생의 황혼을 걷는 그 쓰디 쓴 비애, 비록 자식이 있고 평생에 모아놓은 재산이 있다 손쳐도 그 자식과 재산으로부터 이제까지의 권위와 능력을 빼앗기게 마련인 것이 바로 노년의 생리요, 서글픔일 것이다.
아직 힘과 정력이 넘치는데도 일거리와 희망을 박탈해 가는 직장과 사회의 냉혹함 속에서 노인들은 외로울 수밖에. 하물며 사궁에 처한 참으로 가련한 이들이 그 참담한 노년이야 더말해 무엇하겠는가.
한 노파의 경우다. 젊어 남편 잃고 두술이면 배부를 걸 한술로 허리 졸라매며 2남1녀를 키웠다. 그 보람있어 둘째 아들과 딸은 미국에 건너가 잘 살았다. 그러나 노파가 의지하고 사는 큰아들은 가난했고 노파는 그게 늘 가슴 아팠다.
그런데 형편이 펴인 둘째와 딸이 노모를 모시겠다고 미국에서 초청장을 보내왔다.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자식들의 효성에 끌려 노인 천국이라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먼저 딸네집에 들른 노파는 여름휴가를 뗘난 딸네 빈집에서 한달 동안 집을 보았다. 잡숫고 싶은 것 실컷 잡숫고 「컬러」TV보면서 마음껏 편히 쉬라는 딸과 사위의 극진한 효성이란 바로 그런 집보기였다.
그후 둘째아들을 찾아간 노파는 그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식당에서 덜그럭거리고 있는 아들을 발견했다.
노파가 다가가자 아들은 입에 손까지 대 쉬쉬하며 귀엣말을 했다. 『어머니, 안사람 깨우지 말고 그냥 놔두세요. 저 사람 어머니 오신 뒤로 신경을 너무 써서 여간 피로하지 않은가봐요」 그렇게 말하고는 그 아들은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출근을 하는 게 아닌가.
물론 노파는 서둘러 가난한 큰아들이 살고 있는 고국으로 돌아와 장독뚜껑 여닫는 재미로 구시렁구시렁 늙고 있다.
극단적인 한 예였지만 나는 아직도 우리나라는 노인들에게 있어서 자못 자랑스러운 천국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무릇 효는 덕의 근본이며 모든 가르침이 여기서 시작된다는 효경의 근본정신이 살아있는한 우리나라의 노인들은 확실히 행복한 삶을 가지고있으며 또 노인문제에 있어서도 전망이 있다는 그런 생각이다.
그렇다. 소외감을 가진 노인들에게 한 가닥 빛이 되고 기꺼운 삶을 주기 위해서는 물질적 봉양과 편안한 쉼을 주는 제도에 앞서 노인들의 뜻을 헤아리고 그것을 실현시켜 주는 일, 노인을 향해 이쪽 표정을 부드럽게 하여 공경하는 그런 우리의 전통적 경장사상이 무엇보다 요청되는 것이다. 아랫사람이 웃사람에 대해서 지켜야할 윤리인 경장의 정신은 바로 경노의 미덕으로서 신분·재산·학식의 여하를 불문하고 노인은 무조건 공경의 대상이라는 우리의 동양 사상만이 노인문제의 최선책임을 명심해야 한다.
연장자들의 그 경험적 식견을 존중하고 그네들이 가졌던 삶의 경륜에 대해서 경외감을 가지고 대할 때 노인들은 뿌듯한 삶의 희열을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네들의 권위와 능력을 인정해주기 위해 무엇보다 가정에서 어린아이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시대가 가졌던 그 역사의 험난함과 그 간난 기구함을 슬기와 지혜로 이겨내어 오늘을 이룩한 그네들의 자랑스런 어제를 이야기해 주어야한다.
이러한 정신적 바탕이 선 다음에 노인의 고두가 거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그네들이 결코 소외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심어주기 위해 옛날 노인들이 사랑방에서 노끈을 꼬고 돗자리를 매던 것처럼 그들에게 일거리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 인간은 창조적 생활이 아닌 이상 늙어갈수록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절망하게 마련인 것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자식과 이웃에게 보탬이 되는 보람찬 일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일깨워주는 것은 그네들 삶을 값진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현실에 떠밀려 불안한 노경을 맞은 사람들일수록 내세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노인들에게 종교를 갖게 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도 대단히 중요한 일일 것이다.
또한 작은 문제이긴 하지만 노인학교나 경노당 운영이 자칫 빈부귀천의 대비가 되어 오히려 위화감을 조장하거나 장기나 두며 시간이나 보내는 그런 곳이 아니라 보다 창조적 삶이 이루어지는 그런 생활의 터전으로 바꿔주는 사회나 국가 정책의 세심하고 적절한 뒷받침도 요청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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