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풍조가 다시 오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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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지난 연초 긴축의 깃발을 높이 들면서 동검·절약의 생활기풍이 뿌리를 내리는가 했더니, 그것이 어느새 슬그머니 퇴색한채 소비풍조가 다시 고개를 드는 듯하다.
고객의 발길이 뜸해져 울상을 짓던 고급유흥업소와 「패션」가가 다시 흥청거리고 한 때 잠잠했던 증권·부동산가의 투기「붐」도 눈에 띄고 있다.
사치와 낭비가 개인이나 가정뿐 아니라 나라까지 멍들게 하는 요인임은 여기서 새삼 지적함 필요도 없다.
이런 병폐가 되살아나고 있는 현상은 양원을 따지면 소비절약풍단가 전체 국민속에서 아직도 생활화하지 않는데 있겠지만 그 보다도 정부의 긴축시책이 최근 흔들리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데 있는 것이 아닐까. 긴축의 고삐가 알게 모르게 풀려 시중의 자금사정이 나아지자 그 동안 간신히 뿌리를 내리려던 절약「무드」도 무산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금년들어 계속 감소돼왔던 국내여신이 6월부터 3개월간 7천8백50억원이나 공급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계절적으로 추석·추곡목매·연말결제자금등 국내자금수요가 크게 늘 시기인데다가 수출목표달성을 위한 통대노가요인까지 겹쳐 총통화 증가율을 25%선에서 묶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뚜렷이 내걸었던 긴축의 기치가 이처럼 퇴색하는데는 중소기업의 잇단 휴폐업과 도산, 그리고 이에 따른 노사분규·실업자대책등이 사회문제화되고, 특히 정국경새까지 몰고 온 이른바 「YH사건」같은 경제외적요인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긴 하다.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눈앞의 고통과 사방에서 밀려오는 압력에 못이겨 긴축이 지금 중도하거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 모두의 우려인 것이다.
무릇 어떤 일이든 중단하는 자는 성공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번 긴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질적인「인플레」를 잡기위해 편 긴축정책이 실패로 끝난다고 할 때 처음부터 시작하지 아니함만 같지 못함은 물론이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감은 또 어찌될 것인가.
장래에 대한 전망이나 예측이 안정적일때 비로소 투기「마인드는 줄고 그래야만 「인플레」도 억제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논리다.
긴축정책이 일관생을 잃고 도중에서 근절되거나 특히「인플레」의 고삐를 잡고 말겠다는 공언이 공언이 되고 만다면, 생각해보라. 「아파트」추첨장에 수천명씩 몰려드는 투기의 난장판이 또 다시 재연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그리고 이제와서 긴축이 덧없이 풀린다면 긴축바람에 도산한 기업들의 억울함은 차치하고라도 정부의 말만 믿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알뜰하게 푼돈이라도 저축해온 선량한 시민들의손실은 어떻게 보상해 줄 것인가.
거듭 강조하거니와 정부의 모든 정책추진은 국민의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하는데 가장 큰 주안점이 두어져야 한다. 신뢰의 바탕이 확고할 진댄 근검절약의 기풍은 자연스럽게 생활화될것이며 사치와 낭비를 일삼는 몰지각한 사람들의 폐풍도 그 자취를 감추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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