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하지 못한 재간은 사회에 해만 끼칠 뿐 이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이화여대총장이 취임식이 1일 상오 10시 이대대강당에서 열렸다.
제8대 김옥길 총장에 이어 18년만에 정의숙 새 총장(제9대)을 맞이하는 이 자리에는 이대재학생(4년 생)과 교직원·동창생·외부인사 등 5천여 명이 참석했다. 김옥길 전 총장은 이날 이대명예총장으로 추대됐다.
1961년 어느 가을날 김활란 선생님으로부터 총장의 자리를 물려받던 일이 바로 어제만 같은데 어언l8년의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떨리는 가슴을 어루만지며 취임식에 나오던 그날, 겨우40을 갓 넘었던 제가 이임 식의 이 자리에 서서 고별의 인사를 드리는 오늘은 60의 고개를 바라보는 늙은 몸이 됐습니다.
그 동안 여러분들의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많은 학부모님과 선배님들은 어려울 때마다 제게 힘이 돼 주셨고 즐거울 때마다 기쁨을 함께 해주셨습니다. 희생과 봉사를 생활의 신조로 삼으시는 여러분이 관용과 아량으로 저를 이날까지 보살펴 주셨고, 그 힘이 이화의 오늘의 영광을 이룩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한 이화의 동창 여러분께 고마운 뜻을 표하고자 합니다. 이 나라의 어디엘 가도, 아니 전세계의 어디엘 가도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그 여러분들의 사랑을 저는 언제나 어디서나 분에 넘치도록 받았다는 사실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평생 간직하게 되겠습니다.
부속병원의 많은 식구들을 위시하여 여러 부속기관의 여러 선생님들, 이화의 살림을 맡아 밤으로 낮으로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신 사무직과 기능직의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정문·후문을 비롯하여 이화의 모든 건물을 밤낮으로 지켜 주신 수위 아저씨들, 비와 걸레를 들고 학교의 안팎을 늘 깨끗하게 치워 주신 청소 아주머니들 여러분의 숨은 공로를 잠시도 잊을 수 없었으므로 총장의 자리를 물러나는 이 마당에 공손히 인사를 드립니다.
어려운 시대에 이 동산에서 배우는 재학생들에게 한마디 남기고자 합니다. 이화는 지식에 앞서 인격을, 기술에 앞서 사람을 가르치는 배움의 집입니다. 평소에 늘 하던 말을 한번만 더 되풀이하겠습니다.
진설과 정직을 갖추지 못한 재간은 오히려 세상에 해를 끼치고, 자신의 분수를 모르는 철없는 욕심은 나와 이웃을 파멸로 이끕니다. 큰 뜻을 품고도 조급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이란 조급하면 치사스럽게 굴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긍지입니다. 여러분은 꾸준히 제 길을 가서 제구실하는 훌륭한 일군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우리재단 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정의숙 교수를 다음 총장으로 선임하였고, 우리나라 문교부가 그의 취임을 승인한 사실을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오늘 취임하는 정의숙 총장은 자랑스러운 이화의 딸로서, 선배들과 동료들 사이에 신망이 두텁고, 후배들과 학생들의 존경의 대상인 뛰어난 교육자이며 유능한 행정가입니다.
지나간 18년 동안 제게 베풀어주신 여러분의 그 정성과 사랑이 고스란히 신임 총장에게 옮겨져 그를 통하여 이화가 계속 자라고, 이화를 통하여 조국이 계속 번영하고, 조국을 통하여 세계가 더욱 화목하고, 서로 사랑하는 온 누리의 만백성을 통하여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께 더욱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정의숙 총장의 앞날에, 이화의 앞날에, 그리고 조국의 앞날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항상 같이 하시기를 빌면서 저는 이 자리를 떠나 한 평범한 시민의 길을 가고자 합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건 이화에 대한 정성과 여러분께 대한 사랑에야 무슨 변함이 있으리까! 안녕히 계십시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