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본 야만침략 때 한·중 생사 바쳐 도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4일 서울대 특강에서 우리 역사에서 손꼽히는 항일 영웅들의 이름을 거명했다. 전날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이나 공동성명에선 일본의 역사 도발에 대한 규탄을 자제했던 시 주석이지만, 서울대생 200여 명 앞에선 이순신·김구·안중근·윤봉길 등 항일전쟁의 영웅과 열사 이름을 적시하며 과거 일본에 함께 맞섰던 양국의 역사를 강조했다.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에서 한 첫 대중연설이었다.

 “역사상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마다 한·중은 서로 도우며 고통을 극복해냈다”고 운을 뗀 시 주석은 “400여 년 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양국 국민은 적개심을 품고 어깨를 나란히 해서 전쟁터로 같이 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명나라 등자룡(鄧子龍) 장군과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함께 전사했다. 명나라 장군 진린(陳璘)의 후손은 오늘까지도 한국에서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진핑, 이순신·등자룡 인연 강조 … 한국말로 "대한민국 사랑합니다"
강연 들은 학생 중 100명 초청 약속

진린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수군의 도독, 등자룡은 노량해전에서 일본 수군에게 목이 베인 명나라 부장이다. 특히 진린은 전공을 자신에게 돌리는 이순신 장군을 깊게 흠모했다고 한다. 진린은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자 크게 통곡하며 명나라 황제에게 “애통함에 붓을 들 수 없음을 용서하소서. 순신이 소장의 목숨을 구하였으나 소장은 죽음이 순신을 데려가는 것을 막지 못하였나이다”라는 내용의 절절한 장계를 올리기도 했다.

 시 주석은 “20세기 상반기 일본 군국주의자는 중·한에 대한 야만적 침략 전쟁을 강행, 한반도를 병탄하고 중국 국토의 절반을 강점해 양국이 모두 큰 고난을 겪었다”며 “대일전쟁이 가장 치열했을 때 양국 인민은 생사를 다 바쳐, 힘을 다 바쳐 서로 도와줬다”고 말했다. 이어 시 주석은 “충칭(重慶) 임시정부 유적지나 시안(西安)의 광복군 기념비, 상하이(上海)에서 ‘매헌’ 윤봉길 의사를 기념하는 것은 바로 잊지 못할 역사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매헌(梅軒)은 윤 의사의 호다. 상하이 루쉰(魯迅)공원 에는 윤 의사를 기리기 위한 전각이 있는데, 현판에 매헌이라고 적혀 있다. 시 주석이 공식적으로 윤 의사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시 주석은 강연 곳곳에 일본을 의식한 복선을 깔았다. “중·한 양국의 청년들이 아시아의 미래”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안중근 의사의 명언을 언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안 의사도 청년의 발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한 적이 있다”면서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뜻의 ‘백일막허도 청춘부재래(白日莫虛渡靑春不再來)’라는 말을 소개했다.

 시 주석은 통일과 관련해선 “남북 양측이 힘을 합쳐 남북관계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면 한반도의 자주적인 평화 통일이 꼭 실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중 공동성명에는 없는 ‘자주적’이라는 표현을 쓴 게 눈길을 끈다.

이날 시 주석은 『홍길동전』을 쓴 허균이 사용한 간담상조(肝膽相照, 간과 쓸개를 내놓고 서로에게 내보일 정도로 친한 관계)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했다.

 35분간의 특강 동안 박수는 26번이 나왔다. 시 주석이 “‘별에서 온 그대’를 비롯한 한류 드라마는 중국에서도 큰 유행”이라고 말했을 땐 큰 환호성이 나왔다. 강연 끝 무렵 시 주석이 한국어로 “대한민국 사랑합니다”라고 했을 땐 청중이 모두 기립박수를 쳤다. 시 주석은 중국 도서·영상 자료 1만 권을 기증하고, 강연을 들은 서울대생 중 100명을 중국에 초청하겠다고 약속했다.

유지혜·이상화·허진 기자

[사진=뉴시스]

ADVERTISEMENT
ADVERTISEMENT